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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경상북도까지 내려간 김에 김천의 포도 컨트리클럽에 들르기로 했다. 여기는 베네치아 cc라는 이름으로 2013년에 개장했다가 파산, 매각, 분쟁 등의 (흔한 스토리?) 과정을 거쳐 폐업까지 갔다가는 3년만에 새로 개장하면서 이름을 김천 포도 cc로 바꿨다고 한다. 이쪽 지역이 포도로 유명한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 잘 지은 이름이긴 한데 가면서 듣자니 지금의 주인이 실크리버도 인수한 회사라고 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충북의 명문 실크리버가 주인이 바뀌면서 (이름도 세레니티 cc로 바뀜) 9홀을 추가하였고, 많이 망가졌다는데 여기 포도 cc도 (자두) 9홀이 최근에 추가되어 27홀 골프장이 되었다고 들었기 때문. 원래의 18홀은 다빈치/폴로 코스로 불렀는데 지금은 샤인/포도/자두 코스. 아무튼 한번 가보고 별로면 다시는 안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틀간 골프를 친다. 요즘 일박이일 골프는 생각지도 못하는 변수가 있는데, 몇달전 함께 계획했던 멤버들 중에서 둘이 코로나 확진으로 간신히 땜빵 멤버를 구해서 취소를 면했다.
4월임에도 여전히 쌀쌀한 새벽에 출발하자니 잠실에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골프장으로 들어서는 도로에서 보니 의외로 평지에 도로 옆으로 바로 페어웨이가 보여서 마치 미국의 퍼블릭 골프장 같았으니 아무튼 낯선 풍경이었다. 원래 논밭이었던 지역이었을까 캐디에게 물어보니 농공단지 등으로 택지개발을 해놓은 곳에다 결국 골프장이 들어선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토지법에서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믿어지지 않는다. 기대에 차서는 샤인 1번부터 시작하는데 평평하고 짧아보여서 파의 연속이라 이거 쉬운 코스구만 했다가는 모래판인 그린과 수많은 워터해저드로 고생을 했다. 그린이야 실망스럽기는 해도 봄을 맞이하는 시기니까 새로 갈아엎는 모양이구나 싶어서 개선의 여지가 있겠는데 곳곳에 숨은 연못과 호수는 평탄한 지형 탓에 잘 보이지도 않아서 초행자를 힘들게 했다. 포도 코스로 넘어가니 이쪽은 길기까지 해서 전반과 완전히 다른 스코어를 냈다. 아일랜드 그린인 홀들이 몇몇 있어서 스코어와 상관없이 재미있었어도 코스에 고저차가 좀 있어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면 더 근사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쳤다.
이튿날 후반에 돈 자두 코스는 또 완전히 달랐다. 여기가 나중에 추가된 9홀인데, 충분하지 않은 공간에 홀들을 우겨넣었는지 좁으면서 짧다. 압권이었던 홀이 자두 7번이었는데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까마득한 오르막이다. 드라이버샷의 탄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이언 두번으로도 가능할 정도로 짧은 전장이긴 한데 실제 난이도보다는 홀의 모습에 압도되어 미스샷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첫 방문에서 (언제 다시 와볼 기회가 있겠냐마는) 감히 평하자면, 나쁘지 않은 디자인에 관리상태는 그저그런 수준의 퍼블릭이었고,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매립지 골프장을 제외하면 보기드문 평지 코스라서 독특하다. 직원들이나 캐디도 친절과 거리가 멀었지만 모처럼 멀리까지 와서는 좋은 이들과 즐거운 경험이었다. 누런 잔디에 망가진 그린, 홀들 사이사이에 설치된 그물망을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패키지 요금을 냈어도 요즘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 가보는 지역이라 아무 사전지식 없이 잡은 직지사 입구의 김천파크호텔은 수학여행에나 이용될 법한 수준으로 낡았지만 맑은 공기에 한적한 분위기가 좋았다. 객관적으로는 칭찬할 구석이 없었음에도 그저 다 좋았으니 골프여행은 이렇게 주관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