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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골프치는 행위에 별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든 유럽이든, 아니면 동남아시아 어디든간에 나갈 기회만 생기면 무조건 골프채를 가지고 다닌다. (대한민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혼자서거나 조인해서 치거나 골프를 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망설여지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었다. 몇차례 일본에서 골프를 쳐보았으나 대개 가이드를 끼고 갔었던 4인 여행에서였다.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 우선이었는데 도쿄 근처에서 몇일을 보낼 일정이 생긴 참에 까짓거 한번 해보자며 우선 렌트카 예약부터 했다. 그리고 찾아보니 라쿠텐 고라 등의 사이트에서 1인 부킹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목적지인 요코하마 주변의 골프장들을 찾아본 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에게 이런 계획을 얘기했더니 같이 가도 되겠냐고 해서 결국 2인 골프여행이 되었다. 일본 골프장에는 2인 예약이 보장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약간의 추가금을 내더라도 그게 낫다 싶었고, 하네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찾아서는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서 먹거리를 좀 사긴 했으나) 바로 향한 곳이 하코네 쿠라카케 골프클럽 (箱根くらかけゴルフ場)이다. 여기를 원래부터 알아서 찾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2인 플레이가 보증되는 코스들 중에서 비교적 저렴해보였고, 코스의 설명에 후지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바로 옆에는 아시노코 (芦ノ湖)가 펼쳐진 완만한 코스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에 개장했다고 하니 나름 연륜이 있는 골프장인데 설계자가 누구였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막혔다. 고속도로를 나와서는 하코네마치를 지나 10km가 넘는 거리를 구불구불한 2차선을 올라가야 한다 (하코네에 가시는 분들은 다들 방문하는 아시노코 호수보다 한참 윗쪽이니 그야말로 산꼭대기 골프장이다). 어찌어찌 초보운전처럼 운전해서 골프장에 왔는데 원래 패키지로 인기있는 곳인지 많지도 않은 내장객들은 한국사람들로 보였고,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덕분에 체크인이나 카트를 타는 과정이나 모두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가고 서는 것만 제어가 가능한 카트는 몇주전 월송리 cc에서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그때는 느려터졌다고 불평했었는데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면서 앞뒤의 팀들과 간격도 유지되니 괜찮다고 느껴졌다). 높은 산의 꼭대기에 위치해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으니 쌀쌀한 느낌마저 들어서 제대로 피서를 왔구나 싶었다. 비교적 화창한 날씨였어도 구름이 지나가면 온몸에 샤워를 맞는 기분이다.

그리고 드디어 첫번째 홀. 여기가 일본 제일의 코스인 것인지 주변의 골프장들은 다들 이정도 수준은 되는 것인지 감탄이 터져나오게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어떤 식의 코스냐 하면, 산등성이 초원지대에 만든 식이었는데 숲이 없어서 공이 떨어진 자리에서 치면 된다. 다만 블라인드 홀이 많고, 어프로치 자리에서 그린의 상황이 보이지 않게 높이 솟아있어서 어렵다. 내 생각에는 모든 홀이 제각각 시그너처의 자격이 있다고 보지만 까마득한 내리막에 세컨샷은 우측으로 90도 꺾어지는 4번이나 우측 아래에 아시노코를 끼고 치는 14번의 경치가 그중에서도 제일이었다. 내가 일본에서 골프쳐본 경력이 미천하기에 여기가 보통 수준인 것인지 우연히 훌륭한 코스를 고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돈으로 7만원 정도에 서늘할 정도로 좋은 날씨, 홀마다 감탄이 끊이지 않았던 하코네 쿠라카케 골프장의 유일한 단점은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다는 점일 것이다. 워낙 유명한 휴양지라서 주말에는 교통체증이 더해져서 골프만을 위해서 여기까지 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야 피서 잘했다 싶지만 날이 추워지면 굳이 이리로 오는 이들은 별로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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