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o (Kita/Minami), Ibaraki, Japan

아무리 골프비용이 저렴한 일본이라고 해도 주말에는 상대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에 (특히 도쿄 인근에서는 20만원 선까지 올라간다) 다시 이바라키현의 윗쪽으로 올라가서 이번에는 미토 골프클럽 (水戸 ゴルフクラブ)이다. 동서/남북 코스의 36홀 골프장인데 설계를 아이야마 타케오 (相山 武夫) 씨가 했다고 하며, 꽤나 평점이 좋은 편인데도 점심식사를 포함하여 14만원 정도로 예약할 수 있었다. 좋은 날씨에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렌트한 토요타 하이브리드의 연비는 놀라울 정도라서 도무지 오일게이지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골프장에 도착했더니 주말이라 그런지 골프시즌이라서인지, 아니면 이제 일본도 골프의 붐이 일기 시작했는지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풀부킹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36홀 코스라 스타트 광장에는 발디딜 틈도 없게 카트로 가득했는데 어떻게 운영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스무스하게 골프백을 착착 싣고는 순서대로 출발한다. 역시 일본인가? 잠깐 생각했는데 막상 북코스 1번으로 갔더니 밀리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앞의 팀들이 느리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말없이, 답답하게 바라만보는 것은 우리뿐이었고, 다들 익숙하다는 듯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우리 앞에 늘어선 카트들에 탄 사람들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게 시끄럽고 들뜬 모습이었으니 골프치러 나오면 다들 저렇게 변하는구나 생각하며 나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북/남 코스의 18홀을 돌았는데 이 골프장은 카트가 페어웨이로 들어가서인지 주말이라 젊은 골퍼들이 많아서인지 일단 첫 티샷을 하고나면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도그렉이나 언덕을 넘나드는 홀들이 많았지만 거리가 길지 않아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는데 하나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우리나라에도 그런 골프장들이 있긴 하지만) 페어웨이 중간에 커다란 나무를 심어놓은 홀들이 많아서 낯설었다. 점심식사를 하고는 남코스로 나갔더니 역시나 카트 서너대가 대기중이었고, 결국 오전 10시에 시작한 라운드는 오후 5시가 넘어서 해가 질 무렵에야 끝났다. 주말이긴 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진행이었다. 이날만 그랬는지 평소에도 이렇게 내장객이 많은지 모르겠으나 지칠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진행 말고는 전혀 불만이 없었던 것이, 그린과 페어웨이의 잔디는 상태가 좋았다.

일본의 골프장에 왔긴 해도 문득 눈을 들어보니 10월 중순이라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름이 오면 바다로 가야지, 가을이면 단풍보러 산에 가야지 하면서 살지만 감정이 무딘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그런 식으로 살아오지 못했다. 어쩌다 여행을 가더라도 아아 좋구나 했다가 문득 정신이 들면서 비생산적인 일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네 그러면서 살았다. 골프를 뒤늦게 배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잘하기도 어려운 운동에 하루 반나절 이상을 고스란히 바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도 해외에 골프치러 가면 새벽부터 밤까지 골프장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하루에 18홀만 쳐야하는 일본이다보니까 이런 풍경을 즐길 시간도 난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게 라운드에 시간이 걸렸으나) 해가 중천인 시각에 골프를 마치고는 근처 카페나 공원에서 멍하니 세월을 흘려보내는 상황도 별로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왜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까, 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자위해보지만 앞으로는 편하게, 대충대충 살자니 오래전 나이먹고 빈둥거리기만 하던 선배들을 뒤에서 흉보던 기억이 떠올라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