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it Windmill, Bangkok, Thailand

혼자서 온 방콕이기 때문에 어제는 Lakewood에서 오전내내 골프를 쳤고, 오후에 공항 근처의 르메르디앙 호텔로 와서 체크인했다. 여기에는 Nick Faldo가 설계한 18홀 골프장이 딸려있어서 (골프장에 호텔이 딸려있다고 해도 맞는 말임) 스테이앤플레이 플랜으로 묵기로 한 것이다. 느즈막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슬슬 골프장으로 나가보니 이미 내 골프백이 카트에 실려있었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카트에는 역시나 한국인들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어제 호텔에 체크인하면서 보니까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름다왔고 잔디의 상태도 좋아보였다. 사실, 방콕 인근에서 유명하다는 Panya Indra 등을 가봤던 짧은 경험으로 공항 근방에 있는 코스들은 가성비 위주의 골프장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었고, 시내에서 한시간 정도를 가야 고급 코스들이 있겠거니 했다가 좀 놀랐다. 심지어 여기 써밋윈드밀은 야간에도 운영되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잔디의 상태는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어제의 경험으로 차가운 음료수를 몇 병 샀고, 캐디가 재촉해도 내 페이스대로 치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후끈한 더위에 노출되자 한타 한타 정성스럽게 치게되지를 않는다. 내장객이 많아 나는 12번 홀부터 일본인 둘과 조인해서 쳤는데 파 3로 시작하면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티샷이 벙커에 들어가서 보기는 괜찮은 시작이었다. 페어웨이로 카트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땡볕에서 조금만 걸어도 지치는데 캐디가 양산을 받쳐들고 따라오긴 해도 나는 우산같은 걸 들고다니면 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모르는 이들하고 조인하면 조금이나마 신중하게 되고, 코스가 아름답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쳤다. 클럽하우스가 섬같은 위치에 자리잡았고, 거기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홀들이 뻗어나가는 모습부터가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거의 모든 홀에서 호수를 만나는 코스. 특히 4번 홀은 티박스가 아일랜드이고, 거기서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면 다시 물을 건너 그린으로 어프로치하는 디자인이다. 파 5인 14번도 비슷한 식이었는데 티박스가 섬처럼 이어서 만들어져 있고, 그 섬들을 잇는 카트길은 다리처럼 지나간다. 1번과 18번이 모두 파 5인데 18번 홀은 물을 두번 건너야하는 멋진 홀이었고, 길지는 않아서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초보자라면 물을 넘겨서 치는 부담으로 고생할 것 같다. 호수가 많아서인지 어제는 골프장에 개들이 천지더니 여기에는 물 근처마다 이구아나가 보였다.

몇일간의 일정으로 태국에 왔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혼자서 다니기가 힘들기도 하고 재미도 적어져서 귀국 비행편을 하루 당겼다. 덕분에 호텔비에서 손해를 봤지만 주말에 밀리는 코스에서 모르는 이들과 조인해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조인하는 경우가 더 집중해서 치기에 스코어는 좋게 나온다). 그래도 숙소로 잡은 르메르디앙 수완나푸미 호텔은 공항에서도 가깝고 고급스런 곳이었다. 골프장과 바로 붙어있어서 실제로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초록의 잔디를 본다. 바로 옆에 윈드밀 레지던스가 있는데 르메르디앙 만큼은 아니겠지만 거기도 숙소가 좋다고 소문난 곳이다. 어차피 혼자라서 유흥을 즐기거나 하지도 않으니 (그리고 평생 일만 하고 살아서인지 멍하니 시간죽이는 걸 못함) 차를 렌트하지 않았다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리조트 안에서만 지내야하는 것에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겨울철 동남아 골프여행에서 숙소는 어차피 밤늦게 들어와서 새벽같이 나서는 곳이므로 고민이 필요하다. 다음에 골프치러 방콕을 다시 온다면, 파타야 등지의 멀리까지 가지 않는다면, 온눗이나 방나 지역에 저렴한 숙소를 잡고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밤에 호텔방에서 찍은 야간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