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Tail, Devens, MA

매사추세츠 주에서 퍼블릭 골프장의 순위를 매기자면 언제나 탑텐에 들어가는 Red Tail 골프클럽은 십여년 전에도 평일 100불 이상을 했기 때문에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비슷한 가격이길래 이번 보스턴 골프여행을 마무리하는 라운드로 잡았다. 가을의 뉴잉글랜드 단풍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쪽 산악지형 골프장들 어디를 가도 근사한 경치일 시기라도 Red Tail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Brian Silva 설계로 2002년에 개장한 18홀이니까 비교적 신생 골프장이고, 지금도 매사추세츠주 퍼블릭 코스들에 순위를 매기면 상단을 지킨다. 개장 초기에는 대회도 여기서 많이 했었다. 2009년에는 US 여자 아마추어 대회가 열려서 당시 십대였던 제니퍼 송이 우승한 곳도 Red Tail이었다. 비싼 가격 때문에 기대만큼은 아니다 등의 평가도 있었지만 십년이 지나도록 가격이 그대로니까 오히려 관리상태가 부실해진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프로샵에 도착해서 계산부터 하려고 기다리다보니 앞에 서있던 분들이 80불 정도를 내길래 혹시나 싶어서 나도 시니어인데요? 했더니 (ID 카드를 보자는 말도 없었으니 얼굴만 보고도? ㅠㅠ) 그 가격에 해주었다. 평일에 카트를 포함해서 이 가격이면 거의 거저다 싶을 골프장이며, 한편으로는 시니어 취급을 받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드라이빙 레인지도 포함이라서 공을 열몇개 쳐보고 연습그린에서 공도 굴려보다가 1번 홀로 갔더니 앞에 아무도 없어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티박스에서부터 저멀리 페어웨이까지 완벽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몇일동안 New England cc, Butternut Farm 등을 플레이하며 잔디의 상태가 괜찮구나 했었지만 Red Tail을 겪어보니 그 골프장들은 평범했던 거였다. 1번 홀부터 페어웨이의 우측으로 그린까지 쭈욱 이어진 벙커를 접하면 만만한 코스가 아니로구나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Brian Silva 설계의 특징인,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듯한 벙커들도 2번 홀의 도그렉을 돌자마자 눈에 들어와서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뭐랄까,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영화나 음악을 접한 그런 느낌이었다. 잔디의 상태도 아주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쳤다.

홀들이 어느 하나도 심심하다거나 비슷한 부분이 없어서 내가 지금껏 가본 Brian Silva 코스들 중에서는 여기가 최고다 (경쟁자로 Kettle Brook이나 Shaker Hills를 꼽겠다). 굳이 시그너처 홀들을 몇몇 꼽는다면, 전반에서는 계곡을 넘겨 티샷하는 6번이 인상적인데 장타자라면 좌측의 벙커를 넘겨서 짧은 어프로치를 하겠지만 나는 안전하게 우측 페어웨이로 올려서 쓰리온을 했다. 이 홀은 그린도 작고 솟아있어서 티샷보다 어프로치가 더 중요했다. 후반에서는 9개 홀들이 모두 제각각 시그너처의 자격이 있다. 특히 어마어마한 경치를 보여주는 파 3 홀들인 11번과 15번, 벙커의 크기가 압도적인 16, 17번 홀들은 티박스에서 바라보는 모습만으로도 어디 잡지 표지의 수준이다. 까마득한 내리막으로 티샷하는 마지막 18홀은 예전 기억으로 대단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앞선 홀들의 풍광에 압도당한 탓인지 감동이 덜했지만 아무튼 대단했다. Red Tail이 몇일간의 골프여행을 마무리하는, 최고의 코스였다고 할 수 있고,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수백불짜리 골프장보다도 낫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