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ropolitan, Oakland, CA

12월초에 조호바루에서 몇일간 36홀씩 치면서 이짓도 이제는 힘들구나, 나도 나이가 드나보다 그랬더니 한동안 쉬게 되었다. 그러고나서 날씨가 추워진 탓도 있을 것인데 이왕 쉬는거 겨우내내 근력운동이나 해야지 했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빈둥빈둥 몇주를 보내니까 다시 손이 근질근질해지던 참이었다. 겨울철 샌프란시스코가 골프치기에 아주 좋지는 않은데 영상 십몇도에 초록의 잔디가 있으니까 올때마다 한두번씩은 골프를 치기는 했었던 동네. 이번에도 무리하지 말고 시간이 나면 나가보자 그런 심정으로 골프채를 가지고 왔다. 오전에 비행기가 도착했고, 이번부터는 MPC (mobile passport control)라는 앱을 깔았더니 입국수속을 금방 했다. 렌트카를 빌리고 곧바로 찾아간 곳은 예전에도 몇번 가보았던 Metropolitan Golf Links. 기록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예전에 여기를 얼마에 왔었나 찾아봤더니 십년전 16불에 쳤었고, 이번에는 카트포함 65불. 많이 비싼 것은 아니니까 그냥 세상이 변해서 그러려니 한다.

여기는 오클랜드 공항 근처 바닷가에다가 Johnny Miller와 Fred Bliss 설계로 만들어진 퍼블릭인데 이들이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고, 원래 1966년에 개장했던 Galbraith 골프코스라는 곳을 갈아엎었다고 한다. 바닷가라 지반이 약해서 해가 갈수록 가라앉는 부위가 생기고, 조금씩 페어웨이와 그린의 언듈레이션이 바뀐다는데 이래서 더 링크스답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바다를 바라보는 동시에 공항 옆이라서 항공기 이착륙하는 소음을 18홀 내내 들어야한다.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기대하고 왔더니 문명세계 한가운데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래도 여기는 오클랜드에서 가장 내장객이 많은 (아마도 가격 때문일듯) 퍼블릭 골프장이라고 한다. 내 앞뒤로 한국말이 들렸고, 손님들 중에는 노숙자가 아닐까 싶은 행색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많이 찾는 곳이라 좋은 관리상태를 기대하면 안될 것인데 바닷가라서 오후에 특히 바람이 심해서 섭씨 14도임에도 춥게 느껴진다. 1번 홀에서부터 그동안의 휴식기를 반영하듯 티샷이 크게 휘어졌는데 그래도 링크스 코스답게 평탄하고 넓직해서 옆의 홀로 넘어가서 친다. 이후에도 크게 어려움없이 그린까지 가지는데 러프의 잔디가 빽빽해서 페어웨이를 지키는 플레이가 필요했다. 후반으로 접어드니 맞바람을 이겨내야하는 더블 도그렉 롱홀인 10번이 최고의 홀이었으며, 14번부터는 물을 넘기는 어프로치가 필요해서 후반이 더 재미있다.

그외에는 전반적으로 기억에 남을 코스는 아니더라도 티박스에서부터 그린이나 옆의 홀들까지 다 보여서 숨통이 트인다. 잔디의 상태를 비판하기에는 바닷가 링크스 코스라 그냥 그러려니 한다. 블루티가 전장은 길지 않아도 파 4 홀들이 360에서 400 미터까지 되니까 어렵기도 했다. 드라이빙 레인지가 있고, 물론 거기는 돈을 내야하겠지만 커다란 연습그린이 두개에 칩샷을 연습할 장소도 마련되어 있어서 (이런 곳은 돈을 받지 않음) 로칼들이 연습하러 많이들 오는 모양이었다. 나름 즐거운 라운드였는데 일몰이 가까와지면서 바람이 강해져서 추웠다. 혼자서 왔으니까 대충 저녁을 때우려고 했는데 구글맵을 켜보니 몇년사이에 한국식당이 주변에 엄청 많아졌더라. 배는 많이 고프지 않았기에 국수집을 골랐고, 배가 차니까 몸도 따뜻해졌다. 한편,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추위에 혼자 골프를 치고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골프에 맛을 들인 이후 지금까지는 그저 의무처럼, 기회만 생기면 (혹은 없는 기회도 만들어가며) 골프를 쳤는데 요즘에는 힘들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가 골프에서 기대하는 것은 라베 스코어일 수도, 내기골프로 벌어들인 몇만원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순수하게 즐거움만 느끼는 몇시간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