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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올란도에는 지난 2001년을 시작으로 지금껏 열번도 넘게 가보았지만 (그래서 디즈니에서 올란도 다운타운까지 웬만한 관광 가이드보다 더 구석구석을 잘 안다고 자부할 정도지만) 골프를 쳐본 기억은 초보티를 벗지 못하던 시절에 두어번 밖에 없다. 그, 두어번이라는 것도 Hawk's Landing과 Magnolia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3일 동안을 온전히 골프만 치리라 결심하였는데 막상 일정을 짜려니 가볼만한 코스가 족히 수십개는 되더라. 눈물을 훔치며 너무 비싼 곳, 좀 멀리 떨어진 곳, 리뷰가 시원찮은 곳 등등 해서 가볼 곳을 추리는데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후보 일순위를 지킨 곳이 바로 여기, Grand Cypress 골프장이다. Bay Hill이나 다른 유명한 PGA, LPGA 투어가 열렸던 코스도 많은데 왜 여기를 그렇게나 와보고 싶어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Grand Cypress의 설계자는 잭니클라우스이며, 27홀로 된 구코스와 (즉 N/S/E 9홀씩) New 코스 18홀로 구성된, 총 45홀 골프장이다. 인터넷의 리뷰에서는 N/S 코스를 도는 게 최고라고들 하던데 나는 거기에다가 특히 (골프의 발상지로 꼽히는 스코틀랜드의 St Andrews 올드코스를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New 코스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조금 더 욕심을 내서 하루에 45홀을 모두 쳐보기로 (결국은 못했지만) 계획을 세웠다. 아직은 해가 짧은 2월이라 사실 쉽지는 않은 도전이었다. 디즈니월드 입구와 거의 붙어있어 호텔에서 아침먹고, 널럴하게 준비하고 갔어도 겨우 오전 7시 15분. 골프장에는 프로샵은 열었지만 골프치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1번 티로 나가다보니 아마도 프로 지망생이지 싶은 한국인 소녀들이 드라이빙 레인지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페어웨이 바로 옆으로는 숙소인 Villas at Grand Cypress가 보이는데 꽤나 좋아보였지만 비쌀 것 같았고, 여기 말고도 Hyatt Regency 호텔도 같이 있어서 다음에는 거기서 묵어도 괜찮겠다 싶다.

인터넷에서는 다들 북코스/남코스의 컴비네이션이 최선이라고들 하던데 (실은 이렇게 해서 18홀이 처음에 만들어진 오리지날이라고 한다) 우리도 운이 좋았는지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타터 할아버지는 East 코스가 가장 아름답다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쳐보라고 추천한다. 포썸 중에 초보가 둘 있어 사실 좀 걱정했는데 짧게라도 앞으로 나가게 되니 페이스는 유지가 되었다. 거리보다는 정확성을 요구하는 소위 "타겟" 골프코스인데 워터해저드가 많아서 공도 많이 잃어버렸다. 봉긋하게 솟은 그린에 올라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아, 저기로 쳤으면 되는 것을.. 뭐 그러하게 된다. 오후에 친 뉴코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 (실은 뉴코스도 인공적으로 자연을 재현한 디자인이지만) 그야말로 잘, 예쁘게, 그리고 근사하게 꾸며놓은 미국 스타일의,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의 전형같은 곳이다. 요새는 국내에도 그가 설계한 코스가 많아져서 익숙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11시 반쯤에 18홀이 끝나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동코스까지도 돌았는데 골프채널의 로고에 배경으로 쓰이는 동코스 7번의 아일랜드 그린을 제외하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나는 내일도 한번의 라운드가 더 남았지만 내일 오전에 귀국하는 동반자들은 사흘간의 강행군에 지쳐하면서도 아쉬워한다. 나야 그저 재미있었지만 이런 식의, 내가 다 계획해서 가이드 역할까지 하는 골프여행은 이제 그만했으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단 내가 너무 힘들고, 마치 돈주고 고용한 운전기사 대하는듯한 경우를 겪어서 그렇다. 그리고 다시 올란도에 오더라도 Grand Cypress를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 이날 한 명이 허리가 아파서 골프를 쉬기로 했는데 프로샵에서는 자기네 방침이 4명 부킹했으면 3명이 치더라도 4명분의 돈을 치러야한다고 우겨서다. 이런 식은 이제 국내 골프장에서도 없을 일인데 플로리다 골프장에서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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