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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제로 거창하게 개장했으나 하필 미국 경제의 내리막길과 맞닥뜨리는 바람에 퍼블릭이 되어버린, 또다른 골프장. Rees Jones와 Steve Weisser의 설계로 2006년에 개장했을 당시의 이름은 Georgia Tech 클럽이었다고 하며, 명칭에서 연상되듯 죠지아텍을 졸업한 부자들이 주된 회원이었다고. 파산한 이후 새로운 주인이 Jeff Peltz라는 사람이라는데 미국 남부에서 인수할 골프장을 물색하던 중 한번만 쳐봐도 모든 홀들이 뚜렷하게 기억남는 코스가 바로 여기였다고 한다. 홈페이지의 소개를 다 믿을 이유는 없겠으나 내 경험상 어떤 코스들은 정말로 한번만 쳐봐도 귀가하는 내내 홀들이 다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Pasatiempo가 그랬고, Bethpage Black 코스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아아 정말 좋은 골프장이었어 하지만 다시 가보기 전에는 뭐가 좋았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코스들도 많다.
Echelon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몇일째 그림같은 클럽하우스를 봐오다가 (애틀랜타 인근에는 원래 회원제였던 코스가 많아서인지 좀 과하게 화려한 편이다) 여기는 그저 동네 퍼블릭같은 건물을 프로샵으로 쓰고 있었다. 미국 골프장에서 클럽하우스를 제대로 이용해본 적은 없으나 라운드 후반부에 저멀리 근사한 성을 배경으로 치는 18번 홀은 확실히 근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회원제 코스에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프로샵에서 돈을 치르기는 했어도 누구 하나 영수증을 확인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비어있는 카트에 백을 싣고는 1번 홀로 가는 것이라 손님을 너무 믿는 것인지 좀 걱정스러울 정도. 유럽의 성같은 클럽하우스는 없는 Echelon이지만 아무튼 1번 홀에서 바라본 코스는 나빠보이지 않았다. 초록물이 그럭저럭 오른 버뮤다 페어웨이는 벤트그라스 코스만큼은 아니지만 빽빽하고 치기 편하게 보인다. 내가 Rees Jones 코스에서 특히 좋아하는 점은 티박스를 약간 높게 만들어서 홀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으며, 비록 오르막 페어웨이라고 하더라도 티샷의 두려움이 덜하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는 화이트티에서도 6천야드가 넘고, 레이팅과 슬로프가 69.7/129, 빽티에서는 심지어 7,550야드에 77.3/150인, 매우 어려운 코스다.
넓직한 내리막 파 4 홀로 시작하기 때문에 티박스에서 코스의 성향을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울퉁불퉁한 페어웨이의 좌측 중간쯤에 커다란 벙커가 있고, 그린의 앞에도 양쪽으로 벙커다. Jones 코스답게 그린으로 가는 앞쪽 일부는 열려있지만 반쯤은 해저드나 벙커로 막혀있어서 핀이 어디에 꿉히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크게 달라진다. 초반은 비교적 평범해보여서 소문만 그럴싸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갈수록 엄청난 경치에 날이 선 레이아웃이다. 예를 들어 5번 홀은 좌측에 호수가 있긴 하지만 넓은 페어웨이여서 마음껏 티샷에 힘을 줄 수 있었고, 그린을 둘러싼 벙커에 잡히지만 않으면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있다. 후반의 홀들은 Rees Jones가 만든 산악지형 골프장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싶은데 11번에서부터 우와 엄청나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두번의 긴 캐리로 끊어가야하는 파 5 홀인데 용케 페어웨이 끝자락까지 세컨샷을 보내놓으면 저멀리 계곡의 끝에 조그마한 그린이 보인다. 거기서부터 짧게는 130미터에서 길게는 200미터까지가 남는데 모처럼 잘맞은 하이브리드로도 살짝 짧아서 해저드에 들어가버렸으나 나로서는 티박스에서부터 세번의 샷이 원하는 대로 맞았다는 것에 뿌듯할 홀이었다. 50야드 정도를 레이업해서 네번만에 그린으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그랬다면 아마 내내 아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홀들은 높은 산위에서 펼쳐지는데 가을이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런 생각을 내내 했다. 저멀리, 높이 솟은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하는 마지막 홀도 그린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일단 두클럽 정도를 더보고 친 세컨샷이 핀 근처로 붙어주어 다행이었지만 그린 바로 뒷편에도 벙커가 있어서 거기로 들어갔다면 완전 낭패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후반의 네 홀들에서 파로 마무리한 것은 이번 애틀랜타 골프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몇일간 조지아 주에서 지냈더니 이쯕 동네에 대단한 관광지는 없어도 편안한 시골 중산층의 생활이 느껴졌다. 막상 살아보면 (인종차별을 비롯하여) 이것저것 불편한 점도 있겠으나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복잡한 도시를 떠나 이런 곳에서 지내면 좋겠다. 저렴한 물가에 친절한 사람들과 좋은 골프장이 널려있는 곳이었다. 오래된 노래지만 Gladys Knight의 "Midnight Train to Georgia"를 들어보면 미국인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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