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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코스의 호불호를 떠나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30분 정도만 내려가면 나오는 골드 cc와 코리아 cc의 매력은 부인할 도리가 없다. 아마도 주인이 같은 두 골프장은 코리아 cc가 27홀에 따로 퍼블릭까지, 골드 cc가 36홀이니까 사실 어마어마한 규모인데 입지의 장점 하나만으로도 사시사철 풀부킹인 것이 이해되지만 그만큼 코스의 상태는 보장하기 어렵다. 언제 생겼을까 찾아보니 1986년에 1986년에 (주)대우 설계 및 시공이라고 나와있으니 벌써 30년이나 된 곳인데 (다른 소스에서는 다키노 미노루라는 사람의 설계라고도 되어있는데 이 분은 곤지암 cc 설계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구글링을 해봐도 나오는 게 없다) 오래된 수도권 골프장의 전형이라고 본다. 뻔한 디자인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저절로 조경이 완성되는 식이고, 코로나 이전에 갔었던 기억으로는 그저 어떤 코스를 돌아도 다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이제는 좀 구별이 되는 것이, 똑같은 지형이라도 본래의 산과 계곡을 그대로 놔두고 길을 내는 것이 예전의 트렌드였다면 최근의 골프코스 설계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철학에 따라 만드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산세를 살려가며 코스를 만들자고 고민하느니 아예 싹 밀어버리고 도면대로 새로 산을 쌓고 물을 채우는 편이 비용 면에서도 유리하다고 한다. 여기처럼 연식이 있는 골프장이 그래서 좀 투박해보인다면 성문안 cc 등의 신생 코스는 각잡고 만든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골드 cc 18홀에 대한 세간의 평은, 챔피언 코스 18홀은 좀 길고 해저드도 많다고 하며, 마스터 18홀은 아기자기하다고 한다. 우리는 이번에 마스터 코스를 돌았는데 코스에 대한 기대가 적었던 탓에 의외로 즐거운 라운드였긴 한데 어쩌다가 한번인 라운드가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가성비가 떨어지는 골프장에 찾아갈 것 같지는 않다. 대규모라서 언제라도 부킹이 가능할 법도 하지만 야간이나 회원의 초청이 아니면 (특히 주말에는) 가볼 기회도 생기지 않는다.
기흥 ic를 나오면 (십년째 공사중인) 복잡한 로타리를 지나 골프장 쪽으로 올라가는데 그사이 이케아와 아울렛이 생기면서 새로 길이 났더라. 예전의 구불구불한 산길 양옆으로 식당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굳이 그쪽 길로 돌아가지 않으면 ic부터 골프장까지 아무 것도 없다. 한참을 돌고서야 빈 자리를 찾는 주차장과 시장바닥같은 클럽하우스는 원래도 그랬던 것 같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해가 쨍한 날씨라 초록의 잔디와 파란 하늘의 조화가 근사했다. 숙련된 캐디가 아니면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카트도로를 지나 우리가 시작하는 쪽은 IN 코스라서 10번 홀부터 시작. 그런데 내 희미한 기억에도 10번이 파 5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이없게도 파 3로 시작한다. 간단하게 체조를 하기는 했지만 삐걱거리는 몸으로 미들 아이언을 잡고 티박스로 올라서니 앞의 팀이 싸인을 준다고 한다. 우리 뒷편에도 팀들이 있었으니 부담스런 시선을 앞뒤로 받으며 첫 티샷을 했고, 공이 제대로 그린으로 올라갈 리가 없다. 10번을 파 3로 만들었다면 1번부터 원웨이 진행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 실력이 시원찮은 것이지 코스가 무슨 죄냐 별별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게 시작하는 라운드였다. 싸인 플레이로 시작했음에도 이후 홀들이 계속 밀린다. 심지어 좀 짧은 내리막 파 4 홀에서는 티박스에 줄줄히 대기하는 카트에 앉아있자니 팀장인듯한 진행요원이 페어웨이 중간에서 대기하며 계속 무전으로 캐디들에게 지시하는 모습도 보았다. 이제 티샷하시라고 하세요, 저 앞에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치냐, 치셔도 된다니까요, 맞으면 책임져요 이런 대화가 캐디의 무전기를 통해 티박스 위로 울려퍼졌다. 원래부터도 이쪽의, 코리아 cc와 여기는 소떼몰듯 진행을 재촉하거나 아니면 무지 밀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예전에는 심지어 새벽 4시쯤 시작하는 티타임도 있었다 (요즘은 3부를 돌리기 때문에 한밤중에 시작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마스터 코스의 후반 홀들은 (경력이 꽤 되었다는 캐디도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분명히 예전과 달라진 레이아웃인 것이, golfshot 등의 앱에서 보이는 코스와 좀 달라졌고, 잔디의 상태도 오랜 전통이 무색하게 별로였다. 티박스마다 깔린 매트는 여름철에 좀 아쉬웠고, 특히 그린이 많이 느렸는데 이거는 3부까지 돌리는 골프장에서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OUT 코스로 접어드니 내 기억 속의 골드 cc가 되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도 비교적 넓고 평탄한 페어웨이에 그저 똑바로만 치면 장애물을 만날 위험이 적었고, 심지어는 그린사이드 벙커도 평평하고 얕아서 오히려 러프보다 쉽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오는 디자인도 아니었으니 홀들이 나름 개성있게 생겼다. 장타자는 장타자대로, 짤순이는 짧은대로 앞으로 전진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코스였고, 덕분에 버디도 몇개 잡으면서 재미있게는 쳤다. 끝나고 계산하면서 보니까 회원일 것으로 생각되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서로 인사하고 하던데 근처 주택단지 주민일 수도 있고, 아무튼 부러우면서 좋아보였다. 은퇴해서 교외 주택가에 살면서 거기 딸린 골프코스에서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하는 식이 내 꿈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좀 이질적이다. 나는 제값을 다 치른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지만 서울에서의 가까운 거리 때문에 언젠가는 또 방문할 날이 올 것이다. 귀가길의 고속도로가 많이 막혔어도 집까지 40분 정도 걸렸으니 입지 하나만큼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