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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솔직히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곳은 아닌데 내가 운전할 것이 아니어서 가겠다고 했다. 평창에는 알펜시아 트룬 회원제 골프장이 있고, 매우 훌륭한 코스지만 바로 옆에 18홀 퍼블릭으로 만들어진 알펜시아 700도 가보고싶었던 참이다. 여기는 전세계 명문 골프장들의 베스트 홀들을 재현한 일종의 레플리카 골프장인데 설계는 (카피는?) 권동영 씨가 했다고 한다. 사연이야 어쨌든 700미터 고지인 평창의 산자락이라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일 것이므로 은근 기대를 했다. 그리하여 금요일 오전에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는 (남이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처음에 어디를 갈까요 상의하던 중에 여주 어디를 갈바에는 십분만 더 가면 원주인데요 거기서 십분만 더가면... 이런 얘기끝에 평창까지 가는 것인데 아반떼 사러갔다가 그랜져 계약하고 왔다는 수준의 결정이었다. 거의 두시간이 걸렸으니 운전자에게는 좀 미안한 심정 (그런데 여기서 또 십몇분만 더 가면 강릉인데... 뭐 그런 얘기를 하면서 갔다). 도착해보니 여기는 여름이 끝난 것이 아닐까 싶게 찬바람이 분다.
알프스/아시아 코스로 명명된 18홀인데 솔직히 각각의 (원래) 홀들을 직접 경험한 골퍼는 많지 않을 것이므로 대단한 감동은 없다. 나도 카피의 원본을 겪어보지 않았으나 홈페이지에서 원래 모양이 어땠는데 산악지형을 감안하여 어떻게 수정하였는지에 대한 권동영 씨의 친절한 설명을 찾을 수 있었으니 대충 만든 코스는 아니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산자락에 앉힌, 탄탄한 홀들의 연속인 것이다. 만약에 알펜시아 700이 레플리카 코스라는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감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화이트티 플레이어라서 코스의 난이도에 따른 영향 따위는 별로 없고, 그날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 아름다운 경치에 공도 그럭저럭 맞아주니까 즐겁게 친다. 모든 홀들이 유명 설계자들의 역작이라 딱히 시그너처 홀을 꼽기는 어렵겠으나 내가 감탄한 홀은 전반에서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홀들, 후반에서는 라운드를 마무리짓는 7번에서 9번까지였다. 홀들을 그저 카피하는 베어즈베스트 청라와는 달리 평창의 산자락에 전혀 위화감이 없게 잘 다듬어놓은 코스였다. 원래의 홀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화이트티에서의 거리도 적당해서 더 좋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