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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킷리스트 최상단에 있었던 춘천의 휘슬링락 컨트리클럽에 정말 우연하게도 가게 되었다. 골프를 많이 (그래봐야 나만큼 치겠나 싶었으나 그냥 가만히 있었음) 친다고 자랑하는 모 지인이 휘슬링락 회원이라고 하길래 그러면 한번 데려가줄 수 있으심? 던지듯이 물었더니 그날 같이 치지는 못하고 위임장으로 부킹은 해주겠다고 해서 급조된 라운드다. 일요일 오전의 비회원 그린피는 많이 비싸겠으나 이런 기회는 무조건 오케이를 해야하는 법이다. 무조건 발렛파킹에 입구부터 주눅들게 만드는 분위기는 이미 해슬리나 안양 cc에서 많이 겪어봤으므로 놀랍지는 않았고, 클럽하우스의 고급스러움이나 식당의 조식 등등은 이제 무덤덤하다. 생각보다 내장객이 많아보였는데 성수기 주말이라 그렇겠지만 모기업이 보험회사를 갖고있기 때문에 접대가 많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무튼 이제는 프라이빗한 컨트리클럽에 초대되어 왔다고 위축되지도 그렇다고 뿌듯하지도 않다. 그저 나는 안가본 골프장을 방문하는 것이 좋고, 그 코스가 좋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27홀의 코스는 Ted Robinson 주니어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의 핀크스가 이 사람의 설계인 것으로 (아버지가 만들었는지 아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음) 아는데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나도 그의 코스에는 익숙한 편이다. Glen Ivy 등 내 경험상 골프장을 아주 어렵게 만드는 분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아버지에 비해 엄청 유명한 코스도 거의 없지만 티박스에서 바라보는 시각적인 면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느낌이었다. 휘슬링락은 2014년에 Eric Iverson이 템플과 코쿤 코스를 리노베이션했는데 이번에 우리에게 배정된 18홀이 코쿤/템플 코스였다 (다른 하나의 이름은 클라우드 코스라고 하며, 참고로 골프다이제스트 순위에서 1등한 조합이 코쿤/템플이었다). 에릭 아이버슨이 참여한 코스들의 특징은 페어웨이나 그린보다도 러프, 해저드 등을 일부러 그렇게 만든 듯 방치된 듯 애매하게 놔둔다는 식인데 휘슬링락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명불허전이라고, 불만이 생길 리가 없는 코스에서의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단히 인상적인 홀을 딱히 꼽기 어려웠던 것이 전반적으로 다 독특하고 아름다왔기 때문인데 어느 한 홀을 떼어다가 다른 골프장에 가져다놓으면 시그너처 홀이 되어버릴 정도. 물론 풍광의 일등공신은 골프장이 위치한 자연환경일 것인데 열심히 꾸미고 관리해놓으면서 오히려 너무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 예로, 몇몇 홀들에 가져다놓은 커다란 쇠공은 저걸 예술로 봐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싶게 뜬금없었다. 티박스의 관리상태도 거의 그린같은 수준으로 잘해놓았는데 내가 몇몇 링크스 코스를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오래된 골프장은 그린이 다음 홀의 티박스 역할도 하기 때문에 아주 칭찬할만하다. 템플 9번은 우리나라에서 클로징 홀로는 좀 드문, 파 3 홀이었고,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며 내리막 티샷을 하는 것도 신선했다. 좋은 골프장에서 잘 놀았는데 생각보다 내장객들도 많았고, 요즘 네이버 블로그 등에서 휘슬링락 다녀왔어요, 트리니티 좋더군요 이런 글들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면 좀 이상하다. 내 경험상 닫혀있던 문이 나같은 일반인에게도 (살짝이라도) 열리면 얼마 있다가 아예 활짝 열려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놀이터는 또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는 법인데 점점 그런 곳이 사라져간다. 흠도 좀 잡아보자면, 휘슬링락의 배타성이나 관리상태는 최고수준이었지만 코스가 뛰어나냐고 하면 최고는 아니라고 본다. 템플 8번처럼 생소한 디자인도 있었지만 상벌이 뚜렷하지도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게 어중간했다. 화이트티에서 드라이버를 잡기 어려운 홀들이 몇몇 있어서 불만을 얘기하는 동반자도 있었는데 그거야 블루티로 가면 해결되겠으나 아하 이렇게 쳤어야하는구나 무릎을 탁 칠만한 부분도 없었다. 샤워실도 여느 퍼블릭 골프장처럼 북적거렸다. 한번 와봐서 기쁜 회원제 골프장이었는데 코스만 놓고보면 경춘권 라인에서는 개인적으로 클럽모우가 더 훌륭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