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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용평 gc와 함께 방문해서 훌륭한 컨디션과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했던 평창의 알펜시아를 드디어 다시 가보게 되었다. 작년에 다녀온 지인의 말로는 매각설이 돌면서 관리상태가 엉망이 되어서 차라리 알펜시아 700 퍼블릭이 낫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었는데 올해부터 관리하는 KMH 레저가 가격은 비록 올렸을 망정 코스관리만큼은 인정하는 회사라 다시 기대를 품고 갔다. 여기는 원래부터 럭셔리한 페어웨이 콘도와 함께 분양한 회원제 27홀이었고, Robert Trent Jones 2세의 설계다. 지금도 알펜시아 "트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동안 Troon 골프에서 관리를 했었지 싶은데 아무튼 기본이 탄탄한 골프장이다. 이제 여러 부킹 사이트에 티타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좀 멀기 때문에 우리는 일박이일 패키지로 발을 들였는데 연휴임에도 의외로 저렴한 패키지에는 알펜시아 콘도에서의 숙박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틀에 걸쳐 36홀을 돌아보기에는 딱이었다.
Meadow/Lake/Forest 코스중에서 첫날은 레이크/메도우 코스의 18홀이고, 이튿날은 매도우/포레스트 코스를 돈다. 오래전 시카고 인근의 Thunderhawk에서 고생하며 RTJ 코스에 맺혔던 두려움은 이제 다양한 골프장들을 돌아보면서 거의 사라진 편인데 우리나라 산악지형에서라면 그 누가 설계하더라도 비슷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며, 다만 알펜시아는 산들 사이 분지에 골프장을 내려놓은 형상이라 색다른 경험이다. 사실 사진빨을 잘 받으려면 (우리가 드론을 날려서 하늘에서 찍는 것이 아니므로) 너무 평평한 코스는 이쁘게 나오지 않는데 여기는 주변에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어서 일단 경치가 좋다. 그리고 태풍이 지난 직후의 날씨도 최고였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이름에 걸맞게도 (내지는 우습게도) 세군데 9홀 코스마다 특색이 있다. 레이크 코스에는 호수가 맨 마지막 홀에 하나 있을 뿐이고, 포레스트에는 초원이, 메도우 코스에서는 숲이 두드러진다.
첫번째로 돈 9홀은 레이크 코스다. 여기는 주변의 용평 gc나 버치힐과 달리 미국 서부 어디쯤의 코스 느낌이 난다. 페어웨이 주변에 집들이 (여기는 아마도 콘도) 들어선 광경도 이국적이다. 리조트 코스라기보다는 레지던스 커뮤니티 골프장이 맞을 것 같고, 아마 처음의 의도도 그러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리조트로 보인다. 벙커가 많고 레이아웃이 재미있지만 화이트티에서는 그리 긴 편이 아니어서 티샷이 적당히만 가주면 웨지를 잡는다. 잘 다듬어진 양잔디 페어웨이에 비해 그린이 에러인데 비가 많이 내려서 그랬겠지만 모래를 잔뜩 뿌려놓아서 퍼팅이 엉망이다. 메도우 코스는 확실히 좀 수풀 해저드가 많았다. 그래도 평탄하고 길지 않은 페어웨이라 세컨샷으로 웨지를 드는데 그린 주변에 벙커가 많아 온그린이 쉽지 않았다. 여기도 그린이 모래밭이었으나 뿌린 시기가 좀 되었는지 잔디가 좀 자라줘서 느릴 뿐이지 튀는 일은 적었다. 메도우 5번이 재미있는데 장타자는 원온을 노리게 되는 짧은 내리막 파 4 홀이지만 그린 주변에 해저드와 엄청난 벙커가 있어서 버디 아니면 보기가 된다. 이런 레이아웃이 정말 잘 설계된 거라고 생각하고, 이런 식의 리스크/리워드 설계가 좋은 골프코스를 결정한다고 본다. 메도우 8번도 비슷하게 장타자라면 투온을 바라고 좌측 페어웨이로 도전하게 설계되었지만 그쪽에 집들이 있어서 사고의 위험에 질러가지 못하도록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 살짝 아쉽다.
숙소인 홀리데이인 알펜시아 콘도는 깨끗하고 넓고 조용해서 인근의 (오래되고 지저분한) 용평리조트에 비해서는 훨씬 좋았다. 둘째날 아침에는 먼저 메도우 코스를 다시 돌았고, 마지막으로 포레스트 코스인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시원하고 맑게 개인 날씨 덕인지는 몰라도) 알펜시아 트룬의 코스들 중에서는 최고의 경치라고 본다. 코스는 시작부터 산을 올라가는 전형적인 한국식이다. 물론 평창의 경치이고, 페어웨이가 넓어서 부담은 적으나 파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들도 가까이 위치하기보다는 저 뒷편의 그린 위로 지어놓아서 보기에도 좋고 혹시나 잘못 쳐서 사고가 날까 부담도 없다. 해저드가 부담스런 마지막 두 홀에서 모두 투온에 파를 했으니 내게는 베스트 라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