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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인천국제

hm 2020. 8. 14. 07:19

개장일이 1970년이라니까 50살이 넘은 이 골프장은 처음 이름이 부평 시사이드 컨트리클럽이었고, 연덕춘 씨가 설계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회원제 골프장이지만 내게는 그리 끌리는 곳은 아니었는데 여전히 비회원에게는 폐쇄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근방에 살던 시절에는 이런 곳에 골프장이 있는지도 몰랐으나 연덕춘 씨의 회고에 의하면 부평 시사이드를 국내에 제대로 된 골프장 설계의 개념이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고 한다. 그전에 만들어진 한양 cc, 제주 cc 등은 지적도만 보고는 대충 눈짐작으로 코스를 만들어나갔다고 한다.

마치 미국의 퍼블릭처럼 길옆의 골프장을 곁눈질하며 클럽하우스에 들어오면 갑자기 70년대 세상이 펼쳐진다. 라커나 코스 곳곳이 40년쯤은 전혀 손대지 않은듯 보이고, 심지어는 캐디 평가지도 대충 프린트한 종이에 빨간 색연필로 체크해서 통에 넣는다. 그리고 여기는 곤지암이나 안양 cc처럼 걷는 골프장이다. 예전에는 1인 1캐디였다고 하던데 지금은 두 명의 캐디를 쓴다 (캐디피를 두배로 내야하지만 대신에 카트비는 없다). 거기에 오래된 골프장답게 평평하고 넓직하다. 원래 이 지역은 폐염전을 매립한 곳이었다고 하며, 따라서 (바닷가라고 부를 이유가 없음에도) 시사이드라는 명칭을 썼던 모양이다. 다만 매립지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많이 심어놓아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파크랜드 코스가 되었으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조경이다. 숲 사이로 평지 페어웨이가 있고, 빤히 보이는 그린은 그냥 동그랗고 자그마하다. 러프도 해저드도, 심지어는 벙커도 별로 없어서 예전에 미국에 살 당시 동네 골프장에서 어깨에 골프백을 메고 그저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가던 시절이 떠올랐다. 다만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세월의 탓이겠는데 풍광을 좀 해쳤지만 오고가는 길은 덕분에 편한 편이다.

1번 홀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가자니 우리도 느리고 앞의 팀은 더 느려터졌다. 안양이나 곤지암과의 차이는 평일임에도 팀을 많이 받아서 매 홀마다 골퍼들, 캐디들까지 왁자지껄 복잡한데 이러니까 진짜 미국의 municipal 코스 기분이 난다. 듣자하니 여기가 오래전부터 코스관리도 엉망, 캐디들도 버릇없기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개선된 것인지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그런 느낌은 없었다. 맘놓고 드라이버를 지를 수 있는 코스이고, 여간해서는 벗어나지 않는 넓은 페어웨이다. 아직은 좀 덥긴 해도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려니 오래된 티가 나게 조경이 무척 아름다왔다. 저 멀리에 아파트나 건물이 보이긴 해도 모처럼의 힐링 골프다. 카트도로조차도 없으니 코스 안에는 인공적인 구조물이랄 것이 없다. 한편 딱히 시그너처 홀이라고 부를 구석도 없지만 내 경험으로는 물을 건너가야하는 3번과 4번 홀들이 그나마 멋졌다. 여기는 웬만한 요즘 골프장이라면 흔한 광경이겠지만 평평한 코스라 티박스에서부터 저멀리 해저드, 그리고 그 너머에 자그마한 그린까지 다 보이니까 좀 힘이 들어간다. 화이트 티에서도 200미터가 넘는 16번 파 3 홀도 5번 우드로 겨우 온그린해서 파를 잡았으니 기억에 길이 남을 홀이다. 마지막 18번 홀도 대미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는데 화이트 티에서도 507미터인 이 홀에서 드라이버, 5번 우드, 4번 아이언으로 쓰리온 파를 했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중간에 다리에 쥐가 나서 티샷하고 풀썩 주저앉아 한참을 주물렀는데 평소에 운동안한 티가 나서 쪽팔린 것 말고는 만족스런 라운드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십년쯤 전까지는 인천국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내장객이 많은 골프장으로 꼽혔다고 한다. 이 날도 꽤 복잡했으니 주말에는 아수라장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예로부터 인천그랜드 cc 싱글은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고들 했는데 인천국제도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날 나는 생애 베스트인 76타를 쳤다. 첫 홀을 일파만파로 적었으나 내가 파를 한 장본인이기에 스코어는 캐디가 적어준 거나 내가 golfshot으로 기록한 거나 정확하다. 공도 하나로 쳤다. 티샷을 잘 받아주는 편안한 페어웨이 덕택인데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티샷 오비가 나면 스코어야 어찌어찌 막아내더라도 골프치는 재미가 가신다. 이날은 당연히 밥을 내가 사야하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인천이라 저녁식사도 기대되는 날이다. 그쪽에 살던 당시에도 청라지구나 계양산 쪽으로는 별로 가본 일이 없어서 어디를 가야하나 고민이었고, 결국 송도의 백제원 식당을 방문. 종일 걸은 탓에 피곤했지만 부른 배를 두드리며 (허리띠 버클을 하나 풀고는) 동반자의 차에서 꾸벅꾸벅 조는 맛도 끝내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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