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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조호바루와 일본을 다녀온 후, 비교적 따뜻한 날씨에 국내에서도 두어번 정도는 라운드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순부터 눈이 내리며 매섭게 추워져서 내가 취소를 고민하지 않아도 골프장 측에서 휴장입니다 문자를 보내주었고, 미끄러운 도로를 운전하다가 날씨와 도로상황이 궁금해 틀어본 TBS 등의 라디오에서는 내내 정치 얘기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아아, 이게 나라냐... 다시 어디라도 더운 동네로 가서 땀을 흘리고싶다 생각하며 동남아 항공편을 살펴보았는데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비싸져버린 항공권에 그나마도 거의 매진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첫번째 성수기라 그러려니 하면서 아무튼 나와 비슷하게 추운 대한민국의 겨울을 욕하던 몇몇과 단톡방에서 입씨름한 끝에 오랜만에 다시 찾은 태국. 운이 좋게도 마일리지로 이코노미석 하나를 찾은 것이 다행이었고, 밤비행기로 방콕으로 가서는 금토일 3일간 죽어라고 골프만 치다가 귀국하는 일정을 잡았다.

아침부터 덥고 피곤했지만 다들 밝은 표정으로 우리가 첫날 찾아간 곳은 공항에서 3,40분 떨어진 더파인 골프장이다. 여기가 방콕인지 다른 지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얼추 방콕 시내에서도 멀지 않은 곳인데 가성비로는 탑급이라고 하며,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한다고 해서 식사도 한식, 손님의 대다수가 한국사람이다. 시골의 버스터미널 느낌이 드는 클럽하우스에 살짝 불안했고, 식당에 가득한 한국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앙헬레스 골프장인가 싶어서도 더 불안. 성수기의 절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이 싼 것인지 비싼 것이지, 그리고 골프장을 누가 설계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는데 18홀 코스의 수준이나 가격과 상관없이 우리는 그저 한국의 추위를 벗어나 초록의 잔디를 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리고 여느 한국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성비 골프장이라고 하기에는 잔디의 상태가 좋았다. 카트패쓰 온리라서 페어웨이는 그런가보다 해도 그린이 아주 빨랐다. 어렵지 않은 레이아웃에 평평한 그린이라 버디의 행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래 쉬어서 그런가 버디 퍼팅을 번번히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쓰리펏이 일상이었다. 기억에 남는 홀들이 여럿 있었는데 긴 전장에 써드샷 지점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어지는 3번 홀처럼 파 5 홀들이 쉬운듯 어려운듯 재미있었다. 그린 앞의 호수를 넘기는 17번, 18번도 라운드를 마무리하기에 손색없는 홀이었다. 한국인들만을 위한 식당은 누가 메뉴를 짜고, 요리를 하는가 궁금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캐디들 교육도 잘 시켜놓아서 (내가 만난 몇몇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상냥하면서 열심히 한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많은 한국인 팀들을 받아놓고는 장부 한번을 들여다보는 일도 없이 스무스하게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까다로운 손님들의 요구사항까지 척척 처리하시는 사장님 이하 직원들이 대단해보였다 (내가 만약에 다시 이 골프장에 온다면 오직 사장님과 사모님 인상이 좋아서일 것이다). 좋은 날씨에 괜찮은 골프장이었긴 한데 풀부킹인 팀들이 거의가 한국인들이어서 모처럼만의 일탈에 들떴는지 시끄럽고 때로는 술에 취해 서로 싸우는 것처럼 시끄러워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온통 한국사람들이니까 조심할만도 한데 못알아듣는다고 캐디에게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희롱이나 시덥잖은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태국으로 와서는 종일 진땀을 흘려가며 36홀을 돌았다. 해질 무렵 저녁을 먹고 (하루 세끼를 위에 적은 한국식당에서 해결한다) 마사지에 야식까지 정신없이 바쁜 하루. 무슨 한이 맺힌 것처럼 나를 혹사했는데 이것도 성격탓일까? MBTI 결과가 너는 뭐니 나는 이건데 동반자들과 얘기를 나누었지만 나도 좀 별나긴 하다는 생각을 했다. 업무를 한다치면, 가령 오전에 내가 10이라는 일이 적정량이라면 종종 15 내지는 20 만큼의 일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마구 짜증을 내면서도 어찌어찌 정해진 시간내에 끝을 낸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텐데, 오후에는 또 일이 없어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인데, 아무튼 나는 강박적일만큼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사서 고생을 한다. 오후에까지 여유롭게 일하는 이들도 있던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골프도 마찬가지여서 가끔 (18홀만 치고 좀 쉽시다 그러는) 동반자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하니 아무래도 나는 좋은 리더의 성품은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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