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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환경에 클럽하우스부터 숙소와 18홀 골프코스까지 럭셔리하게 만들어진 경남 남해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Southcape Owners) 클럽이 좋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으나 굳이 그 돈을 들여서까지 가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사이 다른 골프장들도 가격이 엄청 올라버렸고, 무엇보다도 근방에 사는 (성공한) 대학동기 형님이 초대해주어 성사된 라운드였다. 작년에 누군가와 골프장 얘기를 하다가 왜 사우스케이프를 안가보셨나요 그런 질문에 (비싸서요...ㅠㅠ) 뭐, 그래봤자 파인비치나 드비치 수준 아니겠어요? 이렇게 대답했더니 그딴 소리 하지 마세요 차원이 다릅니다 이렇게 정색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아무튼 여기는 남해의 바닷가에 Kyle Phillips 설계로 만들어진 18홀 리조트 코스이며, 굳이 숙박하지 않더라도 (비싼 그린피만 감수하면) 부킹이 가능한 퍼블릭이다. 사천공항으로 매일 두편의 항공기가 가긴 하는데 나는 대한항공 빠라서 김해공항까지 가서, 거기서 차를 렌트해서는 거의 두시간을 달려서 남해로 갔다.
드디어, 마침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에 다녀온 자랑을 하게 되었는데 내 감정이 무뎌진 것일까 그간 워낙 좋은 곳들을 많이 가봐서 그런가 눈이 튀어나오게 호화스럽지는 않았던 클럽하우스. 사진으로 찍으면 근사한데 실제로 보니까 좀 낡은 티도 나고 그랬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숙소를 잠시 둘러보다가 시간이 되어 나간 골프코스는 정말 근사했다. 전반 9홀을 선셋, 후반을 선라이즈 코스라고 부르던데 선셋 코스는 (바다가 몇몇 홀에서 보이기는 했어도) 여기저기서 많이 봐왔던 산악지형 코스였고, 나름 재미있고 어렵긴 했지만 대단하다 수준은 아니었다. 후반으로 접어들어서 13번 홀 정도에 이르면 거기서부터 대체 여기다가 어떻게 골프장 허가를 받았을까 싶게 한려수도를 즐기며 친다. 바다를 넘어가기도, 그린 뒷편으로 바다가 배경이기도 한 홀들이 17번까지 계속되어 (파 3 홀들인 14번과 16번이 압권임) 치는 내내 감탄하며 골프를 즐겼다. 푸른 다도해의 느낌은 드넓은 태평양과 또 달라서 작은 섬들과 그 사이를 지나는 어선을 바라보며 치는 골프는 공이 잘맞거나 휘어서 죽거나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홀은 다시 클럽하우스를 향해 돌아오는 18번이었는데 두번의 도그렉 파 5 홀이면서 어프로치 지점에서 바라보는 그린 주변의 벙커들과 뒷편의 건물은 여기가 그저 예쁘게만 만든 곳이 아니라 골프코스로 진지하게 설계한 곳이로구나 납득하게 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우스케이프는 바닷가에 있을 뿐이지 링크스 코스는 아니다. 일단 골프장이 놓여진 자리가 평평하지 않은 산악지형이고, 홀들의 구분이 뚜렷해서 대체 어디가 우리 그린일까 고민할 이유도 없다. 역시 Kyle Phillips 설계인 영암의 사우스링스와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코스다. 나같은 한국 골퍼들에게는 차라리 이런 식이 낫다고 보는데 스코틀랜드의 명문 링크스라고 해도 항공사진에서나 근사하게 보이지 티박스에서나 페어웨이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다 거기가 거기같은 풍광이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골프장 부근에 살았던 적이 없었고,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골프장이라는 곳을 접한 입장에서는 계곡과 언덕을 따라 잔디가 깔려있으면서 저멀리 능선이 겹쳐보이는 경치에서 공을 쳐야 제대로 골프를 하는구나 느낀다. 사우스케이프 오너스에서는 거기에 더해서 푸른 바다와 오밀조밀 섬들이 배경으로 깔려주니까 지금껏 가본 우리나라 골프장들 중에서는 단연 탑급이 맞다. 산악지형으로 시작하여 점점 바다로 나아가는 디자인도 좋았고, 특히 실제 풍광도 좋긴 하지만 사진빨이 기가 막힌다. 비싼 가격에 어울리는 관리상태와 친절함도 좋았다. 굳이 딴지를 걸자면, 근사하고 럭셔리함에 취해 골프 자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인데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앞뒤의 팀들이 공을 치기보다는 사진찍고 떠들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일박이일 골프투어에 항공료와 차량 렌트비를 빼고도 인당 백수십만원이라는 비용도 (이번에는 내가 지불하지 않았으나) 좀 심하다 싶었고, 음료수나 커피 등등이 다 너무 비쌌다 (그럼에도 숙박이나 골프나 연일 풀부킹이라고 한다). 인생에 한번 정도의 경험이려니 나도 그렇게 만족했고, 비현실적으로 근사한 리조트에서 골프까지 쳤으니 금상첨화로구나 식의 인상을 남기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