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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십년전쯤까지 시카고에 오면 무조건 들르던 골프장이었다. 당시에는 학회로 오면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서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일행중에 누군가가 골프를 좀 치자고 제안하면 거의 무조건 Arboretum이었다. 밴이나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던 시절이라 위치가 어디쯤인지, 원래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얼마씩 저를 주시면 됩니다 가이드가 얘기하면 돈을 모아서 줬는데 아마도 인당 150불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세상물정 모르는 촌놈들인 우리는 시카고 근처에는 골프장이 별로 없나보다, 그래도 한국보다 엄청 싸다~ 그러면서 좋아들 했었다). 가이드가 매번 달랐어도 골프장은 여기로만 안내했으니 커미션이 있는지 주인이 한국사람인지 알 길은 없으나 그럭저럭 이뻤던 풍광만 기억나고, 끝나고 시카고로 돌아오는 길에 송원이었나? 인근의 한식집에 들러서 밥을 먹으면 완벽한 하루였다. 당시의 기억으로 이미 몇년전에 간략한 소개를 했었는데 당시의 댓글에서 여기 괜찮은 골프장인데 진가를 모르시는군요 식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처럼 나는 별로 좋았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후에 혼자서 혹은 서너명이서 차를 렌트해서 시카고 인근을 돌아다니면서도 굳이 Arboretum을 찾을 생각을 안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워낙 좋은 골프장이 널려있는 지역이라 가볼 곳이 많은 것도 이유지만). Dick Nugent 설계로 2010년에 개장했다고 하며, 주변에는 깔끔한 주택가가 늘어선 지역에 있다.
새롭게 리뷰를 적는 이유는 물론 예전과 전혀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5일 일정으로 시카고를 방문했는데 호텔을 Lincolnshire 지역에 잡고 여기저기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유명한 퍼블릭들을 다녀보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시카고의 3월말, 4월초는 약간 추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내가 가려고 계획했던 리스트에서 Thunderhawk를 빼면 모두 4월초에 개장해서 열심히 부킹을 받고 있으니 단단히 준비하면 별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상상한 이상으로 추워서 tv에서도 Great Plains 지역의 기상이변에 대해 연일 난리였어도 Cantigny도, Highlands of Elgin도 세찬 비바람을 맞아가며 돌았는데 급기야는 (4월 중순인데...ㅠㅠ)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이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위험도 감수하며) 몇몇 골프장을 찾아가보았지만 아예 문을 닫았고, 허탈한 심정으로 일단 호텔로 복귀한다. 점심을 먹고나니 약간 눈보라가 소강상태라 그래 한번 더 나가보자 호텔방에서 대체 뭘 하겠냐 심정으로 바로 인근의 Arboretum을 다시 방문했는데 쥐죽은듯이 텅빈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 기대를 접었건만 프로샵에서는 카트를 내어줄 수 없으나 걷는 거라면 내보내주겠다 대신 안전은 책임못진다 이런 반가운 얘기를 한다. 솔직히 공짜로 내보내줘도 좋을 날씨인데 30불을 지불하고 (눈을 맞으며) 1번 홀로 향했다. 첫 티샷을 준비하면서 뒤돌아보니 방금 만났던 프로는 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눈이 내리지만 오히려 바람이 잦아들어서 어제보다 나았다. 금방 신발에 물이 차고, 푹푹 미끄러지는 잔디였지만 이제야 알겠다. 예전에 몇차례 방문하고서 내가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초보자에게 너무 어려운 코스여서 그랬던 것이다. 거의 모든 홀에서 페어웨이나 그린 옆으로 연못이 자리잡고 있었고, 물을 넘겨 어프로치하는, 소위 아일랜드 그린이 한두개도 아니고 여럿이다. 티샷을 적어도 160-180미터는 쳐야 페어웨이에 도달하는 홀들도 있으니 백돌이가 경치를 감상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물을 넘어가는 티샷에 다시 거기서 물을 넘겨서 어프로치하는 4번 홀이 대표적인데 비스듬한 경사에 엉거주춤 자세로 친 웨지샷이 멋지게 그린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후반에서 만난 13번 홀도 비교적 넓직한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서는 우측 해저드를 넘어 높게 솟아있는 그린을 공략하는 디자인인데 비슷한 홀을 어디선가 봤다싶었지만 시각적으로 멋졌다 (다시 말하지만 초보자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15번도 4번과 비슷한 형태인데 이 골프장의 시그너처 홀로 꼽고 싶다. 오늘 보니까 비록 잔디가 누래도, 페어웨이는 눈과 비로 질척거려도 모든 홀에서 전략을 고민해야하는 재미있는 코스였다. 동네 퍼블릭치고는 좀 심한 디자인인데? 그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이 골프로구나 싶었으니 예전에 별로였던 코스도 다시 돌아보면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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