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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가보았을 레이크사이드 cc를 다시 방문. 티타임을 신청하면 회원제인 서코스는 어쩌다 한번씩, 퍼블릭 남/동 코스 중에서는 남코스로 부킹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랜만의 동코스 라운드다. 늘 새로운 코스를 찾아나서는 편이지만 그래도 위치나 규모 덕택에 어쩔 수 없이 기회가 생기는 곳이고, 자주 간다고 늘 잘치기도 힘든 골프장이다. 골프장이 후져서 꺼려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언제 가더라도 아름답고 잘 관리된 코스가 반겨주긴 하는데 비싼 돈을 치르면서 (특히 평일의 경우에는) 아는 이를 만날까 괜히 꺼려지기도 한다. 내 기억에 남코스나 동코스나 똑같다고 (비슷한 경치에 똑같이 어렵다고) 남아있으니 이번에는 어디 한번 제대로 평가해보리라 마음먹은 참이었다.
바야흐로 가을의 초입이라 수많은 카트와 골퍼들로 북적거리는 스타트 광장에서 어렵사리 내 골프백을 찾아야했다. 카트로 갔더니 앞의 팀은 업무상 몇번 보았던 공무원들이었고, 뒷팀은 직장의 높은 분들이 따라온다. 시선을 의식하며 티샷을 했는데 다행히 잘 날아가준다. 언제부턴가 첫번째 티샷이 그날의 골프를 좌우하게 되었으니 시작부터 공이 산으로 가버리면 아무래도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샤프트가 약해서 그런가 드라이버 치면서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훅이 나는데 그래도 페어웨이가 넓어서 죽지 않는다. 하지만 굿샷 소리를 들으며 이동해서 보면 그린까지 180미터 보셔야해요 소리를 들으니 여타 골프장에 비해 약간 더 긴 정도인데도 확실히 어렵다. 티샷이 예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졌어도 10미터만 더 나가준다면 골프가 훨씬 즐거울텐데 그런 아쉬움은 여전하다. 코스의 전장을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동코스가 7,666 야드로 셋중에 가장 길다고 나와있는데 화이트티의 위치는 매일매일 달라지니까 (나를 포함해서 다들 레이크사이드에서는 남코스가 가장 길다고 느낀다) 체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동코스 역시 오래된 숲이 페어웨이를 둘러싼 경치라 분위기는 남코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둘이 다른 코스는 맞았다. 나는 서코스에는 몇번 가봤을 뿐이지만 레이크사이드의 진가는 서코스라고 생각했고, 다른 두 코스는 그저 길기만 하네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실력이 좀 나아지고 나니까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 접근성이 좋고, 기회가 많아서 그렇지 동코스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괜찮은 골프장이다. 남코스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기억에 남는 홀들이 비슷하게 구성된, 예를 들어 180에서 200미터인 파 3 홀이라든지 호수를 따라 빙 둘러가는 파 5 홀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실제 디자인은 좀 다르긴 했다. 도그렉이 많은 편이지만 넓고 평평한 페어웨이도 마찬가지였어도 몇번 와보니 남코스와는 확실히 다른 경치다. 호수를 따라 돌아가는 5번에서 7번이 레이크사이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홀들이다. 여름철 날씨가 좋지 않았음에도 페어웨이 잔디는 흠잡을 곳이 없었고, 그린은 보기보다 빨랐다.
동코스 1번이 그늘집 앞에서 티샷해서 언덕을 넘어가는 330미터 파 4인데 레이크사이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쉬운 홀일 것이다. 언덕만 넘기면 내리막 라이에서 파 또는 버디가 나오는데 힘이 들어가면 그게 또 힘들다. 이어지는 긴 홀들의 연속에서 전홀 보기를 목표로 치니까 아우디 파가 만들어지지만 이후 더블, 트리플도 나온다. 화이트티에서 360 내지는 400미터인 파 4 홀들은 아무래도 드라이버샷 200미터로는 쓰리온이 상책인데 그렇게 마음을 먹더라도 티박스에서 들어가는 힘은 어쩔 수가 없다. 티샷이 잘 맞았어도 어프로치가 그린에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 우리나라의 오래된 골프장들은 칩샷 쓰리온이 편안하다. 내 스타일에서는 좀 짧으면서 그린 주변이 어려운 골프장이 더 좋긴 한데 가끔은 가보면 웨지를 잡을 거리가 나오기도 하니까 일관성이 없는 내 스윙 탓이지 내게 절대 불가능한 거리는 아닌 거였다. 그리고 아무리 골프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지만 동반자가 누구냐에 따라 스코어가 달라진다. 동반자가 잘치거나 못치거나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심이 생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편안하게 내 골프를 치게되는 이도 있다. 이걸 이겨내는 것이 소위 멘탈이라는 건데, 레저로 즐기는 운동에서 굳이 내 마음가짐까지 단련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불편한 이와는 안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실력과 컨디션에 따라서 불편함의 정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번에도 공이 좀 맞으니까 동반자의 농담도 그저 농으로만 들렸고, 나도 툭툭 맞받아치며 즐겁게 쳤다. 아무튼 결론은 더 연습하고 레슨받아서 더 잘치면 만사 오케이.
그리고 오랜만에 레이크사이드에 왔더니 여기 캐디들이 얼마나 홀륭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특히, 지난 주에 비에이비스타를 다녀왔기 때문에 더 극명하게 비교된다. 캐디피가 천정부지로 올라가니 캐디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니 말이 많지만, 점점 힘들 일을 기피하는 세태 탓인지 지방에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노캐디를 하는 곳도 많이 생기지만 확실히 능숙하고 편안한 캐디는 즐거운 라운드에 필수요소다. 어떤 캐디가 훌륭하냐 딱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어도 골프장에 좀 다녀보신 분들은 대충 공감하실 것이다. 고급 회원제에서 어리고 예쁜 분을 만나도, 쉼없이 돌리는 퍼블릭에서 닳고닳은 언니를 만나더라도 이 느낌은 매번 달라진다. 거리를 불러주고 공을 닦아주는 기본적인 일들 말고도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개입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비에이비스타에 가면 안되는 몇가지 이유,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쓴다면 거기에는 캐디에 대한 지적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고, 반대로 당신이 레이크사이드를 꼭 가봐야하는 이유 뭐 이딴 제목이라면 유능하고 편안한 캐디가 포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