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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클럽디 거창

hm 2022. 10. 8. 12:30

클럽디 (Club D)라는 회사는 전국 곳곳에 골프장을 운영하는데 (원래 괜찮았던 회원제를 인수한 클럽디 금강을 빼면) 대단한 평가가 어려울, 그만그만한 코스들이었지만 가격이 나름 착했다. 클럽디 속리산이나 보은 등도 골프장이 위치한 지역이 무조건 근사할 산속에 있기 때문에 훌륭한 경관과 관리상태였던 기억이다. 경상남도 거창이라는, 초행길의 외지인이 생각하기에 골프장 말고는 아무것도 만들 일이 없어보이는 위치에 조성된 27홀 골프장인 클럽디 거창, 여기도 무슨 다른 회사에서 골프코스를 조성하다가 중단되어 오랜 기간 방치되었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전국에서도 가성비로는 탑일 것이다. 처음에 설계를 누가 했는지는 찾을 길이 없었고, 대개 산자락을 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속도로를 (대전통영, 광주대구 고속도로의 순서로 내려간다) 나와 클럽하우스로 가면서 보니까 상당히 고지대에 지어졌기에 여기는 무조건 아름다운 가을 산세를 보겠구나 기대하며 들어서게 된다. 코스가 위치한 감악산이라는 곳에 풍력발전소가 있어서 페어웨이 옆으로 커다란 풍차가 늘어선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근사해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산속인데 막상 골프장에 도착하니 대체 어디서들 왔나 싶게 풀부킹이어서 놀랐다.

일박이일로 왔기 때문에 첫날은 남/동 코스의 순서로, 이튿날은 동/서의 순서로 돌았다. 시작하는 남코스 1번부터 좁아보이는 페어웨이에 한쪽은 낭떠러지, 반대편은 가파른 법면이어서 우리나라 산악지형 골프장의 전형으로 보였다. 산자락에 층층이 쌓은 계단식인데 꽤나 커다란 산이어서 티박스에서부터 그린이 잘 보인다. 전반적으로 우측으로 돌아가는 형세여서 나처럼 드로우 구질인 왼손잡이 골퍼에게는 한쪽을 막아놓고 친다고 하면 공은 잘 죽지 않았다 (가령, 나는 힘줘서 휘두르면 훅이 나기 때문에 아예 왼쪽 페어웨이 끝자락을 보고 자신있게 친다). 좁지만 주변의 산세가 굉장해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홀들로는 남코스에서 6번과 9번, 동코스는 롱홀인 4번과 다들 시그너처 홀로 꼽는 8번, 그리고 무지 어려웠던 서코스 3번에서 6번이 될 것이다. 몇몇 홀들에서는 짧은 거리라도 끊어가는 레이업을 선택했는데 공이 나가버린 이들은 그린 근처의 특설티에서 공을 올려서 파나 보기를 하지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내 스코어가 더 나쁜 경우도 많았다. 소소하게 내기를 하니까 돈은 나가도 내 선택이 옳았다고 혼자 속으로 뿌듯해한다. 진행이 최우선인 우리나라 골프의 특징인데, 동반자에게 공을 잃어버리고도 잘 막으셨네요 허허 하면서 기분좋게 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기록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오늘이 내가 골프장에 처음으로 나가본지 (다들 머리 올린다고 하는) 13년이 되는 날이다. 나이먹고 뒤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80대 타수를 치는 정도로도 나름 만족스럽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취미도 많이 가져보았고 했지만 골프만큼 단 한번도 질리거나 시큰둥해지는 일이 없이 꾸준히, 그보다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되는 운동은 없었던 것 같다. 달리 몸쓰는 행위를 전혀 안하던 사람이라 그나마 이거라도 없었으면 나이는 먹어가는데 어떻게 삶을 버텨왔겠냐 스스로 위안도 삼는다. 골프가 그렇게 좋니, 그런 얘기를 들으면 너도 한번 일단 시작해봐라 정도로밖에 답을 못하겠던데 조금이라도 잘쳐보겠다는 노력과, 그러나 해도해도 생각같이 안되는 불가사의함이 골프의 매력일 것이다. 그래도 희안하게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멘탈이든 샷이든)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긴 한다. 티샷이 10미터만 더 나갈 수 있다면 그 싫어하는 근력운동이나 등산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니 역시 골프는 좋은 취미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고 병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여 딱히 겁나는 것은 아닌데 이 좋은 운동을, 이 좋은 동반자들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까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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