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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블루원 상주

hm 2020. 7. 25. 13:21

블루원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중인 국내 골프장 세군데 (경주의 디아너스, 용인, 상주) 중에 여기까지 가보면 다 가보는 것인데 여기는 원래 상주 오렌지 cc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던 곳이다. 골프장 설계회사인 오렌지 엔지니어링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것인데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골프장은 허가받기가 힘들지 일단 만들어만 놓으면 돈번다던 시절) 설계하고 만들어준 코스로 주인이 떼돈을 버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욕심이 났을 거라고 본다. 블루원 상주의 설계자는 마이다스밸리, 힐드로사이 등을 만든 권동영 씨인데 당시 오렌지엔지니어링은 권동영, 안문환 두 분이 운영했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은 퍼블릭인데 오렌지 cc 시절부터 좋은 평가를 받던 곳이라 은근 기대가 되었다. 오래전 기억으로, 내가 골프를 치지 않던 시절이긴 한데 주위분들이 회식자리에서 경북 어딘가에 오렌지라고 생겼는데 무지 어렵지만 끝내준다고들 얘기하던 것을 귓동냥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블루원의 회원인 황ㅇㅇ 선생이 일박이일로 예약을 해서 가는 것인데 여행사 패키지와 실은 거의 가격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회원이 부킹하기가 (여행사나 xgolf 등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아무튼 지친 심신을 달랜다는 핑게로 우리는 목요일 오전 일과를 서둘러 마치고 경북 상주로 달려간다. 청주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고서 아리솔 cc (지금의 클럽디 속리산)로 나가는 속리산 ic도 지나서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하니까 멀긴 한데 몇명이서 떠들면서 가니까 운전도 할 만은 하다. 속리산 어귀인줄 알았는데 여기는 백화산이라고 하며, 꽤나 고도가 높고 산속으로 깊이 들어오기 때문에 시원하고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세찬 장마비가 내리기는 했는데 도착할 즈음에는 빗방울이 좀 가늘어졌다. 구름 위로 올라온 느낌의 산악지대인데 막상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를 내려다보면 고저차가 거의 없는 평지여서 희안하다 싶었다. 그러고보니 고교동창골프대회던가 뭐 그런 아마추어 대회를 tv에서 봤었는데 그때의 느낌도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코스였지 산기슭을 돌아가는 그런 식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휴가지 리조트에 온 느낌의 클럽하우스에다 페어웨이 옆으로 골프텔을 지어놓아서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마치 미국의 리조트 코스인 양 멋지다. 이런 이국적인 분위기가 이 골프장의 점수를 한껏 높인 것이 아닐까 싶은데 최근에 보았던 골프다이제스트 순위에서 블루원 상주가 십몇위에 올라가 있어서 기라성같은 회원제들보다 여기가 더 좋은 곳인가? 아무튼 많이 궁금했었다.

나는 권동영 씨의 코스에서는 늘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 골프장에도 기대가 컸다. 때도 바야흐로 7월이니 (비만 오지 않았다면) 코스가 절정으로 아름다울 시기니까. 힐드로사이의 꽃밭은 없지만 그런 조경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차피 우리는 꽃구경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초록의 잔디와 파란 하늘의 대조, 거기에 하얀 벙커나 산이 비쳐보이는 해저드가 끼면 그게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골프장 경치다. 잘 다듬어진 페어웨이와 그린의 물결치는 언듈레이션은 덤이다. 게다가 잔디의 관리상태도 최고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퍼블릭이니까 웬만하면 봐줘야지 했는데 잘 깎여진, 물론 많은 비로 치는 맛은 좀 덜했지만, 페어웨이였고, 러프도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 이 심심산골짝 골프장에 뭔 사람이 그리 많이 올까 싶었으나 열심히 보수하는지 상태가 나쁜 곳은 거의 없다. 아마 (블루원이라는 곳이 sbs 꺼니까) 홍보의 목적이었겠으나 고교동창 어쩌고 대회를 하며 수많은 갤러리들까지 내내 페어웨이를 밟아주게 했으면서도 이정도라면 불만이 생길 수가 없다. 제대로 된 연습장도 있다. 비록 매트에서 치지만 바구니로 공을 사다가 놓고 치게되는데 한쪽 끝에는 왼손잡이를 배려한 타석도 있으니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보기힘든 시스템이다. 그런데 조금 주제를 벗어나서 얘기하자면, 솔직히 골프 방송에서 월화수요일에 틀 꺼리가 없어 고민이긴 하겠지만 예능프로그램 만들던 사람들 데려와서 (재미도 없는) 아줌마 아저씨들 오비내는 그딴 프로를 만드는 것은 불만이다. 골프방송은 골프 그 자체에 좀 진지했으면 한다.

아무튼 우리는 늦은 밤까지의 숙취가 쌓인 채로 첫 홀의 티박스에 올랐다. 지난 몇년간 국내에서, 그리고 미국의 여러 동네에서 내가 멘붕을 겪으며 부린 온갖 짜증을 받아주었던 그 멤버들이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한 내 티샷은 (예전에는 힘이 들어가버렸는지 엄청난 훅에 오른쪽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던) 페어웨이로 잘 날아가주었고, 아 이거 오늘 제대로 코스에 복수하겠구나 싶었다. 비가 계속 내렸지만 땀인지 비인지 모를 물기를 연신 닦아내며 바라보는 코스는 무척 아름다왔고, 카트에 달린 gps로 홀의 레이아웃을 보니 아 이렇게 쳐야하는구나 감이 온다. 예를 들어 긴 파 4가 두번 반복되는 서코스 12, 13번 홀처럼 정말 어렵지만 운인지 실력인지 샷들이 잘 맞아서 파와 보기로 마치고 나면 숨은 차지만 뭔가 이룬 뿌듯함이 느껴진다. 전체적인 스코어보다는 한두 홀이라도 도전해보는 경험도 골프의 즐거움이로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미국의 널럴한 코스에서도 그저 나는 그린으로 빨리 다가가기에 바빴고, 막상 그린에서는 빨리 벗어나서 다음 홀로 넘어가는 것만이 목표인 양 내달렸었다. 여유있는 날이어도 언제나 화이트티에서만 쳤는데 심지어는 혼자서 돌 때에도 빽티로 가볼 생각을 못했으니 조금 아쉽다. 먼 곳까지 온 것에 비하면 공이 생각처럼 잘 맞아줘서 한두 홀에서 더블과 트리플로 망가진 것을 빼면 꽤 스코어가 좋았는데 중간중간 바라보는 산세와 경치는 정말 훌륭하긴 했다. 산들 사이로 길을 낸 서코스는 험난하고, 클럽하우스를 따라서 도는 동코스는 아름답다. 베스트 홀을 꼽으라면 나는 페어웨이 좌측으로 골프텔, 빌리지가 늘어선 동코스 2번을 들겠는데 여기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4번 페어웨이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 울창한 숲 말고도 페어웨이나 그린 옆으로 아름다운 나무들도 있어서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하면서 공을 쳤으니 이런 곳에서 스코어나 따지면서 지나치기엔 아쉬운 곳이다. 우리처럼 빌리지에 묵는다면 근처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는 산골이라 상주 시내까지 나가느니 리조트에다 부탁하면 바베큐를 준비해주는데 해가 내려앉는 페어웨이 옆의 분위기에 취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다. 4인실 단층 독채인 골프텔은 깔끔하고 조용했고, 주변에 불빛도 거의 없어서 (이날은 비록 빗소리를 들었을 뿐이지만) 맑은 날이라면 밤에 은하수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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