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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성문안

hm 2022. 9. 24. 07:12

오크밸리 리조트가 현대산업개발로 매각되면서 기존의 회원들에 대한 대접이 시원찮아졌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아무튼 새로운 18홀 퍼블릭 코스를 개장하는 등 매우 공격적으로 운영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새로 만들어진 코스는 퍼블릭이며, 성문안 컨트리클럽이라는 이름은 누가 생각해냈는지 몰라도 참신한 우리말이면서도 동시에 세련된 어감이다. 퍼블릭이라고는 하지만 노준택 씨가 설계했고, 벤트그라스 페어웨이에 여느 회원제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나는 발렛파킹에 직원이 가방을 들어다주는 식의 서비스는 괜히 부담스럽기만 하던데 그보다 베어크리크 춘천 등에서 보았던, 노준택 씨가 코스를 고급지고 어렵게 만드는 능력을 믿기에 어렵게 티타임을 잡았다. 퍼블릭이라 4주전 월요일에 열리는 티타임을 광클릭으로 잡아야하는데 살짝 비싸서인지 주중 오후에 부킹이 가능했다. 평일 24만원의 그린피는 (정식 오픈이 9월이어서 이 가격이고, 8월까지는 좀 쌌다) 스카이 72의 미친 가격을 생각하면 많이 비싼 편은 아니라고 본다. 오크밸리는 제2 영동 (광주원주)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엄청나게 좋아진 입지인데 성문안 cc는 서원주 ic를 나와서 바로 나오기 때문에 더 가깝다.

나는 새로운 골프장을 가게되면 우선 누가 설계했는지부터 찾아보는데 대충 이렇겠구나 정도는 짐작하며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설계자들 중에서 노준택 씨는 (일면식도 없으나) 좀 특이한 면이 있는데 회원제건 퍼블릭이건 페어웨이에 벤트그라스를 식재한, 좋은 골프장들을 여럿 만든 분이다. 아름답기도 하고 손맛도 좋은 벤트그라스는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좀 비싸고 괜찮은, 그리고 경영진의 관리의지가 확고한 코스에만 심어지는데 설계자의 의지도 일정부분 반영되었을 거라고 본다. 미국에서라면 Tom Fazio 같은 분과 비교할 수 있는데, 주로 (돈을 쳐들이고) 고급스런 코스들 위주로 설계하는 성향이라 아마도 노준택 씨도 비슷하게 비용절감이나 타협을 싫어하는 고집스런 분이리라 짐작한다. 코스를 기획한 현대산업개발 측에서도 오크밸리 신코스 정도로 이름을 짓지 않고 전혀 다른 골프장인 듯 만든 것을 보면 성문안 cc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이제 막 개장하여 깔끔하지만 살짝 어수선한 분위기의 클럽하우스를 나서니 초록의 잔디가 눈에 들어온다. 페어웨이 양측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이 덜 자라서 신생 코스의 티가 났어도 경치는 좋았다. 산세 사이로 조각하듯 디자인된 홀들, 암벽이 그대로 노출된 홀들에서는 휘슬링락 분위기도 느껴졌다. 종이에 도형을 그려놓은듯한 그린의 모습에, 카트도로는 콘크리트로 포장해놓아서 초록의 잔디와 대비되는 길이 마치 외곽선이 뚜렷한 일러스트처럼 보였다 (근래 생긴 골프장들 중에서 루트 52나 세종 레이캐슬이 비슷하게 카트길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캐디에게 그간 내장객들이 뭐라고 하더냐고 물어봤더니 보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풍광이나 코스에는 다들 만족하신다고. 우리도 비슷하게 느끼긴 했는데 지나치게 깔끔한 코스와 그럭저럭 노력한 티가 나는 관리상태에 살짝 낯설었다. 이게 좀 설명하기 어려운데 재미있는 골프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고 할까, 우리나라에 흔한 코스들과는 좀 결이 달랐다. 홍보를 위해 유튜브나 sns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던데 간신히 부킹에 성공하고, 제값을 (정식으로 개장한 이후에도 스카이 72보다는 저렴함) 치른 입장에서는 그저 좋았다는 얘기만 하기 어렵다. 18개의 홀들을 제각각 다른 식으로 디자인하다보니 어디서 보았던 느낌도 나고, 정신없다고 생각되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좋은 코스는 맞으니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홀들을 몇몇 열거하려고 한다. 우선 전반에서는 산세와 초원이 근사했던 3번과 양측의 벙커들 사이를 뚫고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는 7번이 인상적이었다. 압도적인 암벽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9번도 티박스에서 숨이 멎을듯이 아름다왔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후반에서는 아일랜드 그린인 숏홀 12번과 페어웨이보다 큰 웨이스트 벙커가 어마어마해보인 14번을 들 수 있겠는데 인상적인 홀들이 전반에 몰려있다보니 (이날 우리처럼) IN 코스로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각각의 홀들을 뒤돌아 떠올려보면 다 근사한데 고급스럽게, 젊은 시각에 어울리도록 팬시하게, 거기다가 어렵게까지 만들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고 할까, 게다가 개장한지 몇달이나 되었다고 페어웨이 잔디는 벌써 많이 상했다. 부킹하면서 신용카드와 차량번호를 등록해야 했는데 막상 발렛하면서 이름과 티타임을 물어보고, 계산은 등록한 카드가 아니라 따로 다시 해야한다고 하며, 라운드가 끝나면 카트타고 차로 가서 골프백을 실어야 했으며, 나갈 때는 발렛파킹 그딴 거 없이 주차장으로 가서 내 차가 어디에 있더라? 찾아야 했다. 좋은 골프장임은 분명한데 괜한 트집을 잡는 느낌이라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계속 운영하면서 더 개선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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