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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경기도 이천의 회원제 3인방으로 꼽히던 (비교대상이 블랙스톤 이천해슬리 정도였으니 상당한 고급이었음) 휘닉스 스프링스가 2015년에 퍼블릭으로 전환하면서 이름도 사우스스프링스로 바꾸었다. 몇년전까지는 꽤나 자주 갔었는데 언제나 어렵고도 좋은 골프장이었지만 가격이 주변에 비해 몇만원이라도 더 비싸서 차츰 발길을 끊었었다. 이번에도 어디 좀 싸고 좋은 곳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올해의 (정말 미쳤다고밖에는 표현하기 힘든) 비싼 그린피에 황당한 심정으로 에잇 그럴바엔, 하며 여기를 잡았다. 서울에서 멀어보이지만 중부고속도로 남이천 ic를 나가서 바로 나오기 때문에 용인권 어디보다도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점도 여기를 고른 이유다.

실은, 사우스스프링스에 한번 다시 가보고싶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네이버 등의 블로그를 돌아보다가 글의 수준이나 해박함에 반해서 팬이 된 분이 있는데 골프장 얘기를 가지고 신문에 연재도 하시는 모양이고 심지어는 책까지도 낸 분이다. 우리나라 명문 골프장의 역사나 코스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그의 관점이나 해석에 무릎을 치는 경우도 있었다. 문체도 재미있으면서 술술 읽혀서 굳이 책도 사서 읽었다. 후속작인 2권, 3권도 나오면서 다시 요즘에 여기저기 탐방기를 네이버에 올리시는데 즐겁게 읽고있기는 하지만 어쩌다가는 글을 위한 글이랄지 (스폰서를 받아서라고는 생각하고싶지 않은 분이다), 분량을 채우는 것이 어려워졌는지 조금씩 과하다 싶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모호하게 맺는 경우도 있어서 실망도 한다. 아무튼 이 분이 사우스스프링스에 대해 쓰신 리뷰를 읽고는 그렇게까지 좋았나? 싶어져서 내 눈으로 다시 보리라 생각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기는 어렵기로 소문난 골프장이다. 난이도로 유명한 파지오 가문의 Jim Fazio가 설계해서 그렇기도 하고, 많은 벙커가 시각적으로 부담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경험으로는, 어렵기는 한데 레인보우힐스웰리힐리 남코스 수준의 난이도는 아니라고 보며, 실제로 KLPGA 대회에서는 (물론 프로들이긴 해도) 우승 스코어가 20 언더파에 육박한다. 티박스에서, 그리고 그린을 바라보는 세컨샷 지점에서 느끼는 공포감만 극복하면 크게 어렵지 않았었다. 대체 어디로 쳐야하나 난감해도 막상 쳐놓고 가보면 넓직한 경우가 많았다. 사우스스프링스는 (쉬운 골프장은 분명 아니지만) 실제보다 과장된, 일종의 의도된 스토리텔링의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108개의 벙커니 어쩌니 하는데 상당수의 벙커는 한쪽에 모여있기 때문에 만약 한번이라도 들어가면 여간 웨지샷을 잘해도 나오기가 쉽지 않게 되어있지만 또박또박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면 18홀 내내 한번도 안들어갈 수도 있다. 너무 공격적이거나 컨디션이 나빠서 미스샷이 나오면 길고 힘든 하루를 겪을 가능성도 높응 코스다. 대회가 열리는 경우에는 (이 골프장의 시그너처 홀이라고들 하는) 파 3 레이크 8번을 17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마운틴/레이크 순서가 되지만 내 기억으로 마운틴 코스의 후반 서너 홀들이 가장 어려웠다.

공이야 어떻게 맞든 사우스스프링스는 바라보는 경치가 근사하다. 페어웨이에서 그린을 보면 소위 Fazio 가문 특유의, 대충 파놓은 듯 불규칙한 형태의 벙커들이 무서우면서도 아름답게 보인다. 잘 알려진 레이크 8번 말고도 도대체 저 앞에는 어떻게 생겼을까 막막했던 마운틴 2번과 3번도 일단 모양은 아주 예쁘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긴 해도 긴 코스는 아니어서 벙커를 피해 요리조리 치면 그린에 도달한다.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그린에서 투펏 이내로 막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라서 스코어가 좋기는 글렀어도 일단 멋있게 보인다. 이번에 가장 흥미로왔던 홀이 레이크 3번으로, 비교적 짧은 파 4 홀인데 너그러운 티샷에 이어 양측으로 커다란 벙커와 연못을 두고 솟아있는 그린의 위엄에 압도당한 탓이다. 웨지를 잡을 수 있었으나 짧을 것이 두려워 8번으로 쳤는데 좁아보이는 그린으로 공이 날아가 딱 멈추는 모습은 이 샷 하나만으로도 골프치는 맛이 이거구나 싶었다. 레이크 8번을 시그너처라고 꼽지만 내 생각에는 레이크 9번의 티박스와 페어웨이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사우스스프링스의 백미다. 코스 자체의 아름다움은 (특히 사진빨이 좋다) 여기를 따라올 코스가 국내에 없을 것이다. 태풍이 오기 직전이라 공기가 맑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거창하게 시작한 최고급 회원제가 어찌어찌 대중제로 전환하는 경우는 이제 워낙 흔한 스토리인데 그 과정은 제각각이지만 잡음없이 조용히 진행된 예는 드물다. 사우스스프링스는 모기업이었던 보광그룹이 BGF 그룹으로 매각한 후에 회원들에게 입회비의 거의 대부분을 되돌려주면서 잘 마무리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잘나가던 회원제들이 부도가 나는 (혹은 부도를 내는) 등 회원권 가격이 바닥을 치던 시절이어서 그럭저럭 동의를 얻었을 것이다. 게다가 BGF가 보광훼미리마트의 약자이니 결국 자기가 자기에게 판 셈이다. 결국 다시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큰 이익을 남겼을 것이고, 지금도 옛 명성에 기대어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수준급 골프장을 일반에게도 개방한다는 취지는 좋은데 지금의 가격이라면 오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접대가 아니고서는 맘편하게 오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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