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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세이지우드 홍천

hm 2020. 10. 18. 15:34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비싼 골프장으로 꼽혔던 (첫번째는 남해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라고 하던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 홍천의 퍼블릭인 블루마운틴 cc는 이제 이름을 세이지우드 컨트리클럽 홍천으로 바꾸었다 (주인은 미래에셋 그대로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블루마운틴이 훨씬 근사하게 들리는데 국내 어디엔가 (마운틴이 아닌 곳에) 골프장을 더 지을 생각으로 이렇게 바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이야 어쨌든 여기는 아주 근사한, Jack Nicklaus가 설계한 전형적인 산악형 코스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에도 잭니클라우스 설계의 골프장이 참 많은데 직접 그가 와서 보고 만든 코스는 송도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코리아 정도겠지만 어디를 가봐도 그의 설계철학은 느낄 수 있다. 이상하게도 서울에서 남쪽으로는 한시간반에서 두시간 거리의 골프장도 종종 가면서 춘천을 지나 동쪽으로 30분 정도를 더 가면 나오는 블루마운틴은 선뜻 가자고 하게 되지를 않았다. 서울 강남에서라면 경춘고속도로로 가는 편이 최선인데 춘천을 지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심심산골로 접어든다.

여기는 좀 멀기도 하지만 항상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가하곤 해서 27홀을 친 적도 많았다. 비싸니 어쩌니 해도 돈에는 관심이 없는지 팀도 많이 받지 않고, 착한 프로모션 가격도 (코로나로 유사이래 골프장 최고 성수기인 요즘은 그럴 리가 없지만) 종종 나오곤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싸면서 딱 그 가격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러나 코스만큼은 잘 관리된) 퍼블릭이 나올 때가 되었다 싶지만 아무튼 나인브릿지에서나 느낄 수 있던 고급스러움을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컨셉도 나쁘지 않다. 코스는 비전, 드림, 챌린지로 이루어진 27홀인데 나는 잭니클라우스의 설계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스코어도 항상 잘 나오는 편이다. 모든 코스 설계자가 리스크/리워드를 표방하지만 잭의 코스만큼 그 구분이 확실한 경우는 별로 없다. 모험으로 버디를 잡는 시도는 고수들에게나 맡기고 나같은 경우 안전한 길을 택하면 여간해서는 보기로 막아지는 그런 스타일이라 좋아한다. 경치는 말할 필요도 없게 좋다.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시시각각 풍광이 달라지지만 언제 가더라도 감동하는 산악지형이다. 원래는 팀을 많이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바글바글했다. 챌린지 1번 홀부터 내 드라이버는 잘 맞아주었는데 세컨샷으로 그린을 노리기가 쉽지 않다. 160 야드 정도가 남은 터라 투온을 노려볼만도 했지만 벙커 초입까지 130 야드를 보내고는 쓰리온 원펏.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홀 공략법이다. 티샷은 편안하고, 그린으로 욕심만 버린다면 보기플레이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놓았다. 투온이 아니라면 버디는 아예 불가능하지만 드라이버로 더 멀리 보내놓은 동반자들은 어려운 라이에서 혹은 그린사이드에서 고생이다. 일단 공이 적절한 위치로 갔다면 다음 샷은 전적으로 캐디가 시키는대로 쳐야만 한다. 공이 죽지 않더라도 러프로 가느니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서 꺼내서 치는 편이 낫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리네의 너그러운 로컬룰은 언플레이어블 라이로 공이 가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자리로 꺼내놓고 치세요" 이러는데 바로 옆의, 잘 쳤으나 살짝 러프로 들어가버린 내 공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다. 비슷한 불만으로 티샷 멀리건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그린에서는 홀컵을 지나쳐 2미터나 굴러가버려도 "오케이"다. 티박스나 페어웨이에서 한 타를 잃더라도 따지고보면 짧은 퍼트를 놓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튼 명랑골프라는 말로 다 용서가 된다.

여기 파 3는 모두가 다 시그너처 홀이다. 멋진 경치에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기에 바쁘지만 결국 원온은 힘들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나는 몇년전 가을에 비전 2번에서 홀인원을 한 적이 있다). 인공적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카트길 뿐이고 보이는 것은 오직 산과 푸른 잔디. 느슨한 진행으로 앞의 팀이 너무 천천히 가는 것 같아 약간의 마찰도 있었고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오히려 캐디에게 좀 천천히 가세요 그런 얘기도 들었다. 서비스도 음식도 다 최상급이지만 골프코스만 놓고 봐도 비싼 값을 한다. 어쩌면 기껏해야 한해 한번으로 만족해야하는 곳일 수도 있으나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은 충분하다. 물론 불만도 있다. 일단 코스가 Golfshot이나 Hole19 등의 앱에 나오지 않는다. 보이스캐디 같은 국내 제품으로는 찾아지지만 개장한 지 십년이 되어가는 코스로는 좀 실망이다. 두번째로, 여기는 블로거니 인플루언서니 하는 사람들을 이용한 마케팅을 꽤 하는 모양이어서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든다. 대충 봐도 돈받고 (내지는 공짜로 골프치게 해주고) 쓴 티가 팍팍 나는 글들이 네이버 등에 넘쳐난다. 코스가 어떤지 다녀온 이들의 평이 궁금해서 읽어보면 무조건 최고라는 평이어서 (뭐, 공짜로 이정도 골프장에서 공을 쳤으면 당연히 최고라고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반감이 들 수법이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하루 27홀을 쳤더니 피곤하기는 했지만 여기서는 18홀만 치고 말았다면 좀 아쉬웠을 것이다. 보니까 주말 오전의 18홀 그린피가 27-29만원 정도인데 싸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나름 수긍이 가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깊은 산골이긴 하지만 맛집이 널려있는 홍천이다. 동홍천 ic 쪽으로 와서 가리산 막국수에서 느즈막히 먹은 점심은 지친 근육을 축축 늘어지게 해서 귀가길은 조수석에서 곯아떨어지게 만들었다. 아무튼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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