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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서 올해에 이르기까지 새로 생긴 골프장들이 은근 많아서 한편 기쁘지만 대개가 호황을 기대하고 급히 개장한 티가 나서 썩 좋다는 느낌을 받은 신규 골프장은 별로 없었다. 그중에서도 블랙스톤 이천제주의 명성을 이어받은 이 골프장은 충북 증평에 있는데 먼저 다녀온 지인의 말로는 서울에서 더 먼 360도, 내지는 푸른솔 cc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나쁜 뜻으로 한 얘기일 듯).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설계를 누가 했는지 나오지 않으며, 페어웨이의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라고 자랑스럽게 적어놓았다. 이래서야 누가 오겠냐 싶지만 양잔디에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일박이일로 가보기로 했다. 강남에서 출발하면 한시간반은 족히 걸리는데 내가 증평이라는 동네를 가본 적이 없었으니 감이 잘 오지 않았었다. 이정도 거리라면 요즘같이 도로사정이 좋은 시절에는 강원도 문막까지도 갈 수준인데 착한 가격으로 모두 용서가 된다.

 

일요일 오후에 1시가 조금 넘은 티타임이라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일찍 도착해서 보니까 역시 우리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가 욕이 나오든 날씨가 어떻든 어쨌든 가격이 좋으면 내장객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마치 에버랜드에 왔나 싶게 드넓은 부지에 잔디도 여전히 초록이다. 페어웨이의 상태도 듣던 이상으로 괜찮았다. 몇달전 다녀온 더크로스비 같은 경우는 조선잔디에 신생 코스라 그렇다고 하지만 여기는 이제 일년째가 되는 곳이니 그동안 열심히 관리해왔을 거라서 이때까지는 사람들의 혹평이 이해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군데군데 맨땅이 드러난 지역이 있었는데 그래도 공이 떨어진 위치를 보고 잔디로 옮겨서 쳤고, 샷감은 괜찮았어서 그래 맨날 쉬운 코스만 다닐 수 있나 가끔은 좁은 골프장도 가봐야지 이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코스는 어려운 편이었다. 시각적으로 불편하게 좁아보였고 (실제로도 페어웨이의 폭이 매우 좁다), 옆의 홀과 간격도 적어서 여기저기서 공이 날아오곤 했다. 도그렉이거나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홀들이 많아서 도대체 저 너머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그저 캐디의 조언에만 의존하여 공을 쳐야했다. 반면에 전장은 살짝 짧은 편이었고, 해저드티에서는 웬만하면 쓰리온이 가능했다. 에어레이션에다가 모래를 뿌려놓은 그린은 매우 느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경사가 상당했고, 보기보다 빨랐다. 커다랗고 이단으로 된 그린이 대부분이어서 어찌어찌 온그린을 했더라도 승부는 그린에서 갈릴 디자인이었다. 어려운 코스라고 후졌다고 불평하는 것은 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원래 설계가 그런 것일 뿐인데 공이 매홀마다 죽어버리고 고생하면 욕이 나오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아무튼 벨포레는 어려운 타겟골프일 뿐이지 그걸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좀 억울하겠다. 어쩌다 한번 지인들과 공치러 나와서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야지 하시는 분들께는 어울리지 않을 코스인 것은 맞는데 그런 분들을 위한 코스도 많이 있으니까 그리로 가세요 그저 벨포레에 오신 것이 잘못일 뿐입니다 해주고 싶다. 경치도 아직은 리조트 공사가 한창이라 좀 그랬지만 저멀리 호수도 보이고, 옆으로 큰 워터파크가 완성되면 멋질 것 같았다. 캐디나 프론트의 직원들도 상냐와고 친절했다. 그리고 요즘같이 골프장들이 갑질하는 시대에 일박이일 골프가 웬만한 퍼블릭 주말 그린피보다 싸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게다가 내 생각에, 블랙스톤 벨포레의 평가가 별로인 다른 이유는 여기가 신생코스이기 때문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그나마 있는 평야지대는 식량을 생산하거나 주거지 역할이라) 산인 우리나라에서는 골프장이 산악코스일 수밖에 없다. 토목이나 지구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엄청난 고산지대는 없으면서 고만고만한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산세에다가 골프장을 짓자면 이런 식이 된다. 원래 골프라는 운동의 모토가 주어진 자연환경 그대로에서 공을 치는 것이라서 서양의 골프설계는 원래의 지형을 그대로 살리는 식이었을 것이고, 그런 디자인에 익숙한 외국인을 데려다가 여기다가 골프장을 만들게하면 장수 cc 같은 코스가 나온다. 한편, 일본식으로 정원처럼 가꾸는 것이 한때 붐이었는데 용인이나 여주의 오래된 골프장들은 언덕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산등성이를 따라서 계단식으로 평평한 홀들을 만들었다. 이후 국내의 지형에 좀 익숙해지고, 감각이 있는 설계자들이 나오면서 경관과 재미를 모두 살리는 식의 코스들이 만들어지는데 벨포레도 그런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다만 늘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좀 조경이 과잉이다. 특히 소나무를 그린 주변으로 엄청 많이 심어놓는데 그래서는 다 비슷비슷한 풍경이 된다. 조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벨포레는 숲이 울창할 지역과 탁 트인 느낌을 좀 조화롭게 만들어갔으면 한다.

 

 

 

저멀리 보이는 언덕을 넘기면 되겠지 했지만 실제로는 넘기면 공이 죽을 확률이 높다

 

페어웨이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린...

 

사진이 삐뚤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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