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헨느

제주도에서 라헨느 (La Reine)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인데 몇년전에는 이런 골프장도 있었어? 했다가 의외로 괜찮다고 느꼈던 기억이었고, 요즘에는 어디든 부킹만 된다면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다. 그러고보니 그때는 부킹을 부탁한 여행사에다가 (맨날 앞으로 지나치기만 했지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었던) 제피로스 (지금은 아마 그린필드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안다)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엥? 제피로스라니 대체 왜요? 왜 그런 데를 가보고싶으신데요? 그런 대답을 들으며 라헨느를 추천받았었다 (덕택에 그린필드는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제주도 골프장 리스트에 남아있다). 라헨느를 누가 설계했는지 나와있지는 않아도 히든밸리 등의 설계자로 나름 유명한 (그러나 나와는 별로 궁합이 맞지 않았던) 김재열 씨가 여기 사장님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마 다른 분인 것으로 안다).

살짝 쌀쌀한 날씨였어도 12월의 대한민국에서 이정도면 양호한 편. 라헨느는 레이크/오션의 18홀이다. 레이크 코스는 이름처럼 대부분의 홀들이 물을 끼고 있다. 특히 파 5인 레이크 3번 홀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페어웨이가 좌우로 갈라져있어서 특이한데 질러가느냐 돌아가느냐를 결정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멋진 풍광을 목적으로 그렇게 나눠놓은 모양이다. 잘 관리된 벤트그라스 잔디상태와 더불어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나름 멋지다. 이어지는 4번 홀은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전부 좌측으로 호수를 끼고 친다. 이런 경치에서는 공 하나쯤은 잃어버려도 괜찮다. 오션 코스로 가면 해저드를 넘겨치는 5번 홀이 인상적이다. 이상하게도 계곡 사이로 연못을 만드는 경우가 흔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광경은 뭔가 낯설어서 신기하다. 6번 홀도 아일랜드 그린으로 샷을 하는데 나인브릿지의 마지막 홀과도 흡사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와서 라헨느로 잡기를 잘했다 싶다. 그린이 나름 빨랐고, 그동안 가보았던 제주도 골프장들 중에서도 가장 한라산 브레이크를 신경써야했던 코스로 뽑겠다. 비교적 착한 가격에 아름답고 잘 관리된 코스라서 불만이 있을 리가 없겠으나 이 골프장을 제주도에서는 최고로 쳐주지는 않는다고 하니 날좋은 시기에 부지런히 더 다녀봐야겠다.

내가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이 십년쯤 전에 미국에서였는데 당시 내 권유로 같이 치던 동료가 이날도 함께였다. 나는 이후로 골프에 미쳐서 죽어라고 치면서 그럭저럭 보기플레이는 하는 수준이 되었으나 그 친구는 내가 연습을 좀 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노력도 안하면서 맨날 오늘 왜이러지? 이런 식이라 답답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심심했던지 레슨을 받고 하면서 볼스트라이킹이 엄청 좋아졌다. 아직 그린 주변에서나 퍼팅은 좀 부족해도, 폼은 여전히 엉성해보여도 티샷 비거리가 나보다 20미터쯤 더 나오고, 아이언도 좋아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고, 나같은 몸치보다는 그래도 평생 꾸준히 이런저런 운동을 해오던 친구라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해서 이제 나도 다시 연습장을 다녀야겠다 생각을 했다. 나는 왼손잡이라서 타석이 구비된 연습장을 찾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작년까지 다녔던 연습장은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집이나 직장에서 좀 멀어서 퇴근후 교통정체에라도 걸리면 짜증내다가 차를 돌리기도 몇번 했었기 때문에 연습하거나 레슨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요즘의 골프열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연초까지는 연습장 프로에게서 종종 전화가 걸려와서 회원님, 요즘에 공은 잘 맞으십니까? 언제 한번 들르세요 했었는데 가을쯤에 레슨을 위해 내가 연락했더니 일정이 다 차서 지금은 어렵네요, 자리가 나면 연락드릴께요 그러고서는 감감무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