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 인근의 골프장은 얼추 다 가본줄로만 알았더니 북쪽에도 파주 cc와 여기, 뉴코리아 컨트리클럽이 남아있었다. 여기는 1966년에 개장한 오래된 골프장이라 이름은 익히 들어왔었고, 요즘 퍼블릭 부킹을 받아주기는 하던데 평일에 할인이 거의 없어서 선뜻 발길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혹서기 평일인데도 비싸서 망설였으나 안가본 골프장이어서 간다. 처음 가보는 골프장인 경우에 나는 언제나 설계를 누가 했을까 미리 찾아보는데 홈페이지에는 Paul Colby, 마쯔야마 케이지 (松山桂司), 지연봉 이렇게 세 사람이 열거되어 있다. 다들 누구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인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골프장을 만들던 이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여기는 오래된 코스라서 한국의 골프역사에 중요한 역할도 많이 했다고 한다. 1968년에 제 1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를 개최했었고, 1990년에는 (KLPGA의 모체가 되는) 서울레이디스 오픈이 여기서 열렸다고 한다. 과거에 원당이라고 불리던 지역인데 외곽순환도로 통일로 ic를 지나면 금방이다.
1번 홀은 저멀리 북한산을 바라보는 내리막 파 4인데 아쉽게도 이제는 고층 아파트에 가려서 산자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산의 세 봉우리들, 인수봉, 백운대, 그리고 만경봉을 합쳐서 삼각산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코스는 부담스럽지 않게 쭉 뻗어있고, 잔디도 잘 관리되고 있었다. 수원 cc 생각도 나는데 거기보다는 아파트가 멀리 보인다. 그나마 후반인 인코스는 아파트가 잘 보이지 않아서 오래된 골프장의 맛이 난다. 12번 홀을 지나면 "창덕궁"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보이는데 이게 대체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하다. 골프장이 자리잡은 터가 서삼릉 인근이니 원래부터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40년쯤 전에 우리나라는 조경에 필요하다면 문화재도 가져다놓을 정도의 후진국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골프장이 서울 cc 회원들 모임에서 "우리끼리 어디 근방에다가 골프장이나 하나 만들어서 칠까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있는 자들은 뭐든지 맘대로 했을 시절이다.
그런데 기대가 크지 않았어서 그런지 관리상태와 조경이 썩 훌륭하다. 몇몇 홀에서는 안양 cc 느낌도 났으니 저멀리 북한산이 배경인 것까지 하면 만족스러운 코스였다. 처음 몇몇 홀은 아파트가 배경이지만 점차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에 저멀리 그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8번부터는 산속이었다. 오래된 골프장이라 투그린을 쓰는데 어느쪽을 쓰거나 거리도, 그린 입구의 벙커도 비슷하게 만들어놓아서 그건 좀 (특히 자주 방문하는 회원들에게는) 흠이 되겠다. 확실히 요즘에 산비탈을 깎아서 짓는 골프장들과는 다른 경험이고, 몇년전까지는 내 취향이 아니었을 것인데 명문 코스는 뭔가 다르구나 깨닫는 라운드였다. 끝나고 나는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는데 아파트촌 한복판이라 택시를 부르기가 편했고, 요금도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보다 훨씬 저렴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