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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나자 제주도 여행객이 줄었다고 하던데 내가 느끼기에는 (주말에만 가서 그런가) 여전히 바글바글하다. 제주도에는 서른개 남짓한 골프장이 있다고 하며, 그중에는 27홀이나 36홀 골프장도 다수 있지만 나는 이제 거의 모두 가보았는데 비바람으로 고생만 했다거나 중간에 그만둔 곳들도 있으니 사이프러스도 그렇다. 몇차례 방문해서 36홀을 모두 돌아보긴 했어도 비나 안개로 코스를 제대로 즐긴 기억이 없다. 종종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가노라면 기사님이 안됐다는 말투로 어제까지는 진짜 날이 좋았는데요...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많았고, 다행히 이번에는 반대로 내내 비가 오다가 모처럼 화창한 주말이었다.
그래도 기억속의 사이프러스는 아주 제주도스러운 (우리가 제주도 하면 떠올리는 이국적인) 풍광이어서 꼭 다시 와보고 싶었다. 여기는 Dye 디자인에서 참여한 36홀 골프장이고, 정확하게는 Pete Dye의 조카인 Cynthia Dye McGarey가 만들었다. 신시아는 이외에도 우리나라에 페럼클럽과 이븐데일을 설계한 바 있는데 사이프러스는 Dye 코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딱히 못친 공도 없는데 스코어는 엉망이었던 페럼과 달리) 편안하고 쉽다는 것이 대개의 평이었다. 처음 개장하던 당시에는 남코스 9홀이 퍼블릭이었고, 지금은 북/서의 18홀 조합을 회원제라고 부른다. 어느 코스로 돌더라도 사이프러스 (Cypress)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소나무가 맞는지 애매하지만 휘지 않고 똑바로 자라는 침엽수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국적으로 보여도 반 고흐의 그림에서도, 일본의 골프장에서도 흔하게 보았다. 미국 몬터레이에는 (세계 최고라고 하는) Cypress Point 골프장이 있고, 올란도에는 Grand Cypress도 있다.
화창하고 더웠으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시작하는 북코스 1번부터 티박스에서는 페어웨이의 일부만 보이는 삭이라 어째 불안한 티샷을 하게 된다. 막상 넘어가보면 넓어서 대충 치면 되지만 시각적으로 핸디캡을 주는 이런 식은 이후에도 여러 홀에서 만났다. 벤트그라스 페어웨이나 그린의 상태가 최상이었는데 생각보다 평평한 지형에 조성한 코스라서 티박스에서는 사진빨이 별로였다. 마치 에코랜드가 떠오르게 전형적인 제주도 풍경이었는데 광활한 초원같은 부지에 갈대숲과 나무들로 홀들이 구분된다. 링크스라면 링크스 코스지만 정말이지 내가 생각하는 제주도 골프장의 모습이었다. 점점 들어갈수록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인데 제주도까지 왔으면 흔한 산악지형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