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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은화삼

hm 2024. 9. 18. 04:34

한때는 용인 시내에 거의 유일한 골프장이었던 은화삼 컨트리클럽은 (용인시가 많이 확장되기도 했지만) 이제 주변에 세현 cc, 해솔리아 등이 들어선 지금도 고급 회원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1993년에 개장하던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Arnold Palmer 설계의 골프장이었는데 (고) 아놀드 파머가 설계한 다른 골프장으로는 덕유산 cc가 있다. 그 시절에 만들어진 수도권 골프장들은 나중에 어떻게든 9홀 정도를 증설해서 빡빡하고 재미없게 변해버리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는 오리지날 18홀 그대로에 애초부터 (우리나라 최초라고 한다) 카트길을 고려하여 홀을 구분지었기 때문에 비교적 넓직하다. 클럽하우스도 나중에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서 그리 구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럭저럭 먹을만한 클럽하우스 점심을 먹고 나서면 첫 홀부터 산자락을 끼고 비스듬하게 서서 저어기 산 아래의 그린을 공략해야 하니 이게 정말로 아놀드 파머나 그의 회사에서 디자인했을까? 그런 의문이 생긴다. 남양주 해비치에서, 아난티 서울에서, 그리고 수많은 경춘권의 골프장에서 겪어본 바로 그 느낌이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고, 티박스에서 보면 어디로 쳐야 죽지 않을까만 고민하게 해서 (요새는 우리나라에 하도 이런 식의 코스가 많아져서 충격이 좀 덜하지만) 개장 당시에는 말들이 꽤 많았지 싶다. 외국인 설계자임에도 투그린 시스템인 것은 그러려니 한다. 거기에다가 나무마저도 빽빽하니 덕분에 풍광은 아주 좋았다. 그래서 이름마저도 은화삼 (蒑花森)인 모양이다.

그런데 티샷에서의 걱정과는 달리 막상 쳐놓고 보면 내리막이 심하고 화이트티에서의 거리가 짧은 편이라 숏아이언이나 웨지 세컨샷이 가능해진다. 오히려 그린은 무방비 상태로 (주변에 벙커나 해저드가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뜻) 공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물러터진 잔디에 공은 잘 멈춘다. 비가 살짝 내린 9월의 꽃밭이 아름다운데다가 스코어를 까먹지 않으니까 점점 재미있어지는 코스다. 적당한 거리로 티샷을 똑바로 보내놓고 그린을 겨냥하면 파는 어렵지 않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고, 포대처럼 솟아있는 그린에 초행길이라면 좀 당황할 수도 있겠으나 화이트티 플레이어라면 생각보다 넓은 페어웨이라서 곧 적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울창한 숲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홀들이 많으니 풍광만큼은 아주 훌륭하다.

이날은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최근에 귀국한 고○○ 선생과 함께였는데 그전에도 몇번 같이 쳐본 바로는 폼도 좋고 거리도 짱짱했지만 미국에서 (공부는 안하고?) 거의 프로가 되어서 왔더라. 그래도 나도 이제는 멘탈이 좋아졌는지 동반자보다 티샷이 50 야드는 적게 나가도 별 느낌없이 긴 클럽을 잡으면 되겠지 하며 쳤더니 최종 스코어는 내가 가장 좋았다. 점수가 잘나왔다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은화삼 cc는 수많은 용인권 골프장 중에서도 독특하다. 교과목으로 따지자면 분명 국영수는 아닌데 그렇다고 해솔리아, 골드 cc 같은, 수능에 안 나오니까 제끼는 과목도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국영수만 집중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분명 이런 골프장이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오히려 불만은 여기가 회원제 맞나 싶게 느려터진 운영에서 나온다. 9월의 금요일 오후니까 조금 밀리겠거니 해도 거의 매 홀마다 앞에는 한두 팀이 티샷을 기다리고 있다. 그 와중에 마샬이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를 감시하는 건지 그냥 자기도 어쩔 수가 없으니 넋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건지 별 말은 없으나 계속 신경에 거슬린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한 동반자는 매번 티박스에서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던데 18홀이 끝나기도 전에 한 갑을 다 태워버리고야 말았으니 꽤나 밀리는 라운드였다. 이제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간신히 어둡기 전에 라운드를 마쳤는데 보통 비회원에게 열어주는 티타임이 2부 끄트머리니까 이래서는 불안해진다. 붐비는 것만 아니라면 서울에서 거리가 가깝고 경치도 좋고, 전반적으로 좋은 경험이라서 비싸지만 않게 나오면 언제라도 다시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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