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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라비에벨 (올드)

hm 2020. 5. 14. 10:01

이 골프장의 시작은 산요수 웰니스카운티 (혹은 무릉도원 관광단지)였다. 국내 최초로 회원제로만 이루어진 54홀 골프리조트로 요수/요하/요산 이렇게 3개의 18홀 정규 코스에 페어웨이 빌라, 한옥호텔, 레저시설 등을 갖춘 럭셔리 타운을 춘천 인근에 조성한다는, 좀 심하게 원대한 포부였는데 아무튼 지금은 (고급) 퍼블릭 라비에벨 올드코스가 되었다. 듣자하니 오래전에 우리나라 골프장 설계회사로 오렌지 엔지니어링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IMF 이전의 호황기에 상당히 잘나갔던 모양이다. 이 회사를 이끌던 두 명의 공동대표가 안문환 씨와 권동영 씨였는데 설계업이 워낙 잘되니까 (남의 의뢰만 받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본을 유치해서 골프장을 만들 생각까지 한 것이다. 권동영 씨는 속리산 인근에 오렌지 cc를 만들었고 (자기 회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내새웠지만 결국 지금은 블루원 상주가 되었다), 안문환 씨는 훨씬 더 큰 계획으로 산요수 리조트를 기획했었다고 한다. 요수 코스는 안문환 씨가 직접 설계했고, 요산과 요하 코스는 각각 Tom Weiskopf와 Kyle Phillips에게 맡긴다고 했었으니 일이 잘 풀렸다면 정말 엄청난 곳이 되었을 것이다. 산요수 프로젝트는 결국 요수 코스와 한옥 클럽하우스만을 남긴 채 (시공사였던) 코오롱에 인수되어 라비에벨 (La Vie est Belle) 골프 & 리조트라는 희안한 이름의 퍼블릭 골프장이 되었다.

당시는 그렇게 시중에 돈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주가와 집값이 하늘을 찌르고, 마침 경춘고속도로가 건설중이어서 가평에서 강촌, 춘천에 이르는 일대에 고급 골프장들이 무더기로 건설되면서 회원권이 비싼 가격으로 분양되던 시절이다. 저마다 자기네가 최고의 신흥 명문이다 광고하며 지어진 골프장의 상당수는 그러나 결국 부도를 내면서 시공사가 울며겨자먹기로 떠안아야 했고, 몇몇은 그럭저럭 회원제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대다수는 대중제로 개장했다. 산요수 웰니스카운티는 라비에벨로, 엔바인 리조트는 더플레이어스로, 엠스클럽트룬은 오너스 cc로 이름까지 바꾸었는데 그나마 원래의 명칭을 유지하는 파가니카 cc, 클럽모우, 남춘천 cc 등도 있다. 모두 현재의 주인은 시공에 참여했던 건설사들이다.

뭐 골프장 하나의 사정이야 내가 알 바가 아니지만 아무튼 근사한 대중제 골프장이 하나 생긴 셈이다. 처음 개장했던 당시에는 경춘고속도로 끝에서도 한참을 더 가야했는데 지금은 남춘천 ic를 나와서 좌회전하면 골프장까지 가는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이 터널도 오직 라비에벨만을 위해 뚫은 것으로 보이니까 투자는 많이 했다. 골프장 입구에 다다르면 저멀리 (나중에 송호 씨의 설계로 만들어진) 듄스 코스가 눈에 들어오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으리으리 한옥집인 올드코스의 클럽하우스가 나온다. 아침식사메뉴로 희안하게도 비빔밥 등도 있었지만 가볍게 먹는 아침이니까 그냥 전형적인 골프장 국밥을 먹고 나서는데 몇년동안 시범라운딩만 하며 관리해온 조경과 잔디가 꽤 괜찮게 보였다. 과연 넓직하고 편안한 페어웨이에 아름다운 경치여서 (퍼블릭이지만) 주말 오전에 이십만원쯤 지불하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라비에벨이라는, 뭔 생각으로 지었는지 모르겠는 이름만 빼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골프장이다. 그러고 보니 산요수 cc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왜 버렸는지 (그것도 우정힐스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고수하는 코오롱에서) 이해할 수가 없다.

코스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말 아름답고 공치기에도 편안한 골프장이다. 경치에 압도당하는 부담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쳐볼만하다 싶으면 공도 그럭저럭 잘 맞는다. 홀마다 대기도 없고, 부지가 넓어서인지 다른 홀의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관리가 잘된 양잔디 페어웨이와 그린의 상태도 좋다. 페어웨이 중간부터 그린까지 벙커가 많아보이지만 홀의 모양을 조금만 유심히 본다면 돌아갈 길이 확실하게 보인다. 풍경에 취하고, 생각처럼 맞아주는 샷을 바라보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남춘천 인근의 골프장들 중에서는 살짝 비싸게 받는 것이 방문을 망설이게 하지만 18번 홀에서 저멀리 한옥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는 경치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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