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동코스)

여기도 우리나라 골프역사에서 거의 일세대인 곳인데 (원래 서울대 자리에 관악 cc라고 있었다가 이전했다고 함) 지금에야 동탄 신도시로 완전히 둘러싸여버린 상황이지만 1971년에 개장하던 당시에는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동코스 (現 레이크/밸리코스)는 안중희 씨가, 1980년에 추가된 서코스 (現 체리힐/파인힐코스)는 연덕춘 씨가 설계했다니 한국 골프장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연덕춘 씨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골프계의 선구자격인 유명인사이고, 저번에 양지파인 cc의 소개에서 잠깐 언급한 안중희 씨는 찾아보니 평안북도 출신으로 일제시대에 일본 빙상계를 평정한  스케이트 선수였다고 한다.

리베라는 그린힐이나 웰리힐리 등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신안그룹의 골프장이다. 몇년 전에 두어번 가보기는 했었는데 거기가 서코스였는지 동코스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지금도 리베라 cc의 퍼블릭 부킹은 쉽지 않은 편인데 마침 평일 1부 마지막 시간에 그리 비싸지 않게 칠 기회가 생겼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해서 우리는 잔디가 올라온 5월에 전반에는 긴팔을 입고, 후반은 땡볕을 받으며 동코스를 돈다. 봄에는 벚꽃이 유명한 곳이지만 조선잔디의 초록물이 절정에 이를, 덥고 습한 여름 풍경이 나는 좋다. 숲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보이는 풍경도 예전에는 좀 낯설었는데 이제 워낙 그런 골프장이 많아졌고, 신도시 아파트의 형태도 성냥갑보다는 멋있어져서 나름 잘 어울린다. 중국 골프장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편안하기만 한 레이아웃은 아니어서 적당히 도전하는 맛도 있는데 아무래도 딱 내 수준의 아마추어를 고려하는 디자인이다 싶어서 좋다. 이런 식이 한국식의 클래식 코스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Fazio나 RTJ식 모던 코스의 참맛은 보기플레이 수준은 벗어나야 깨닫지 않을까? 그리고 쉽다고 더 잘쳐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도 구력 십년에 라운드 횟수는 열번~ 뭐 그런 동반자들하고 재미있게 치려면 골프장을 잘 골라야한다.

용인권의 오래된 36홀 골프장들, 수원 cc나 태광 cc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신구코스로 나뉘어진 골프장은 어디나 그렇지만 구코스가 짧고 신코스는 길다. 더구나 리베라의 레이크/밸리코스는 사십몇년이나 전에 설계되고 지어진 곳이다. 편안해보이고 해저드도 별로 없어서 오비만 걱정하면 되는데 희안하게도 다들 저 넓은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지 못한다. 좌로 우로 나뉘어져 각자 공을 치고는 그린에서 겨우 만나는 골프다. 티샷이 똑바로 페어웨이를 지키기만 하면 그린까지는 숏아이언이 나 웨지로 공략이 가능했다. 스코어는 어려운 코스에서나 여기나 별로 차이나지 않았지만 서코스를 나중에 돌아볼 기회가 되면 (거기는 한동안 국내 최장코스였다고) 죽을 쑬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리베라의 동코스는 야간 라운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한창 시즌에는 잔디의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대단한 기대없이 방문한 리베라 cc였고, 기대한 이상으로 즐거웠다. 역사와 전통을 빼고는 여전히 좀 비싸다는 느낌인데 근방의 기흥 cc나 화성상록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주변이 온통 신도시니까 끝나고 근처에서 저녁을 맛나게 먹기도 좋은데 리베라에는 외부인들도 들어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두군데 있다. 관악정이라고 하는데 한쪽은 한우를 팔고, 다른 곳은 제주 흑돼지를 판다고. 원래 이 골프장의 기원이 서울대학교 부지에 있던 관악 cc였다고 하여 이름을 이렇게 붙인 모양인데 근처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실은 동탄 2 신도시 개발계획 당시에 리베라 cc를 수용하지 않고 빙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에 특혜 논란도 있었던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신도시가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